'대우학술총서' 500권째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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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학술서 시리즈의 대명사인 '대우학술총서' (이하 대우총서)가 5백권을 돌파했다.

대우재단(이사장 김욱한)이 학술사업을 시작한 지 20년만의 일이다.

5백권째 영광은 프랑스의 지성 폴 리쾨르의 '해석학의 갈등' (양명수 옮김)에게 돌아갔다.

'대우총서 5백권' 은 한국 출판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의 이와나미(岩波)신서와 프랑스의 갈리마르 총서가 일본.프랑스의 '지성산업' 을 상징하듯, 대우총서는 거북 등처럼 말라 터진 척박한 한국의 학술서 시장에서는 독보적 신화로 자리잡았다.

대우총서 1권이 나온 것은 1983년 11월이다. 전공자들이나 보는, 잘 팔리지 않는 분야의 언어학 연구서인 '한국어의 계통' (김방한 지음)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로부터 5백권까지 17년이 걸렸으니 한 해 30권 안팎의 책이 꾸준히 나온 셈이다.

이를 분야별로 정리하면 인문사회과학 1백24권, 자연과학 1백53권, 번역 1백53권, 공동연구 64권, 자료집 6권이다.

대우총서는 무엇보다도 국내 학문의 균형발전을 돕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한마디로 '안 팔릴수록 환영받는 시리즈' 를 고집스럽게 간행, 학문의 전반적 후진성을 극복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또한 '대기업 이익의 사회환원' 이란 측면에서 분명 인정할만한 부분이 있다.

모기업인 대우가 구조조정 등으로 휘청거리는데도 대우재단은 총서 간행을 밀어 붙여 5백권을 넘어 1천권을 향해 계속 달릴 것을 약속했다.

물론 5백권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편집.판매 대행사가 맨 처음 민음사에서 아르케를 거쳐 지금의 아카넷까지 세번이나 바뀌었다.

사명감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나 '돈 안되는 장사' 였기 때문이다. 지금 대우재단은 초판(5백권) 발행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책의 선정 등은 출판사와 별도로 한국학술협의회가 담당한다.

아카넷의 정연재 팀장은 "대우재단이 지속적인 지원의지를 보이고 있어 그 수준에 만족한다" 고 밝혔다.

대부분의 책이 2백~3백권 정도 팔리는 게 고작이었지만 간간히 히트작도 나왔다.

'풍수학인' 최장조의 '한국의 풍수사상'은 20쇄를 기록한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다.

비록 판매는 가난했으나 상복은 풍성해 '학국의 지질론' (장기홍)이 86년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저술상을 타는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번역서인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 , 리돌피의 '마키아벨리 평전' 등은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대우총서도 변화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논저.공동연구.번역 등 3대 사업 중 번역 분야를 점차 줄이면서 '대우고전총서' 와 석학강좌시리즈를 강화할 계획이다.

올 후반부터 나올 고전총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과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 , 헤겔의 '신앙과 지식' 등이다.

여전히 안 팔릴 것 같은 책이지만, 대우총서가 있어 그나마 학술서의 가난함을 면하고 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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