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중앙Sunday 공동 기획]11인 리더십의 새로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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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04면

섬김형 리더십
김문수 경기지사(한나라당)는 ‘섬김형 리더십’(servant leadership)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스스로도 “지도자란 서번트, 머슴으로 잘 섬기는 봉사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내겐 바닥의 머슴 같은 ‘서번트 리더십’이 있는 것 아니냐. 출신도 그렇고, 살아온 것도 바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일일 택시기사로 현장 체험에 나서는 등 머슴 이미지를 앞세우는 편이다. 머슴·일꾼·민심·청렴·소신이란 말들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머슴과 소신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이미지를 같이 쓴다는 점이다. 머슴으로서 소신이 명확해지면 섬김형 리더십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반면 대중을 불신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가부장적 리더십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김 지사의 대중관은 좀 복잡하다. 과거 노동 운동을 할 당시 그는 대중이 의식화·정치조직화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쪽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의 김 지사는 개개인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집단으로서의 대중은 선동에 휩쓸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 때가 많다. “잘못된 고정관념, 정치적 포퓰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말뚝을 용기 있게 뽑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거나 “정치가 인기 위주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다. 대중적 인기만 추구한다면 중진국의 늪에 빠져 남미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김 지사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려 하면서도, 지도자는 원칙과 소신을 갖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한 편이다.

소명형 리더십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란 말을 많이 한다. 대중의 정치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여기는 쪽이다. 그런 면에서 엘리트적이기보다 대중친화적이다. 그는 여권이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던 지난해 2월 “충분히 국민의 이해와 공감대 위에서 추진됐으면 한다”고 속도전에 대해 제동을 거는 듯한 발언을 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땐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달린 문제인데도 협상 전에 정부가 국민과 충분한 교감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론을 받아들이고 반영하는 태도, 대중과 교감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이다.

박 전 대표가 내세우는 주된 이미지는 약속과 소명이다. 개인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위한 헌신과 소명을 우선시하는 스타일이다. ‘소명형 리더십(dedicated leadership)’에 가깝다.그는 대선 후보 경선 때인 2007년 전북대 강연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신뢰와 원칙을 제 생명같이 생각해왔다. …우리나라가 물질적 성장뿐 아니라 진정한 정신까지 함께 갖춘 나라, 그래서 여러분 모두 나라를 믿고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는 진정한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저부터 앞장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해 후보 합동연설회에선 “아버지의 피 묻은 옷을 눈물로 빨면서 ‘내 운명은 따로 결정돼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한 몸 오로지 국민과 조국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창원), “여러분이 제 부모님이고 남편이고 가족이다. 나라를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부산)고 연설했다.

실사구시형 리더십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실사구시형 리더십’(pragmatic leadership)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실사구시·중도실용·시대정신·새로운 진보 같은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2008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백성들 등 따습고 배 부르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고 했다. 같은 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선 “기존 진보 세력이 국민에게 버림받은 것은 말로만 진보고, 말로만 평등이고, 말로만 평화를 외쳤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빵을 줬느냐, 옷을 줬느냐. 실제 이익과 도움이 되는 것을 주는 진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상당히 신뢰하는 쪽이다. ‘민심의 소리’나 ‘국민의 눈높이’란 말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데서도 드러난다.총선 직후인 2008년 4월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민심이 무섭다는 걸 다시 느꼈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를 뒷받침해주면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선 안 된다는 경고도 줬다”고 말했다. 앞서 2007년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를 보면 결국 국민들은 그 시대에 맞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그는 이처럼 대중 친화적이면서 동시에 대중의 비이성적인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스타일이다. “선거란 능력보다 여건과 환경, 즉 바람이 중요하다”(1994년)거나 “민심은 조변석개”(2006년)라고 한 대목도 이런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 손 전 대표는 정치인은 무조건 대중을 따라가고 대변하기보다 때에 따라선 설득을 통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감성적 수호자형 리더십
오세훈(한나라당) 서울시장은 ‘감성적 수호자형 리더십’(emotional guardian leadership)이라 할 수 있다. 감성 사회의 문화적 흐름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읽어내는 매력 있고 세련된 행정가의 이미지를 부각한다. 그가 즐겨 쓰는 용어도 창의·브랜드·클린·르네상스 같이 감성을 자극하는 말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감성적 리더십의 요소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목전에 온 감성 사회에선 디자인·문화 같은 요소가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거나 “정치든, 행정이든 소비자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대중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엘리트 중심적’에 가깝다. 대중의 잠재력과 판단에 대한 불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2005년)는 책에서 그는 “1867년 미국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샀을 때 ‘역사상 가장 비싼 아이스박스를 사들인 바보’라는 여론의 모진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여론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항상 움직인다. 그러나 민심은 숨어 있으며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썼다. 또 “발자크는 ‘지도자는 여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여론을 대변만 하는 것은 지도자의 길이 아니다’고 했다”면서 “무능한 지도자는 여론에 끌려 다니고, 영악한 지도자는 여론을 타고, 뛰어난 지도자는 여론을 이끌어간다”고 했다. 그는 여론이 요동치는 것을 경계하며,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계몽적 리더십
유시민(국민참여당)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계몽적 리더십’(enlightening leadership)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대중과의 소통과 참여를 앞세우는 민주적 지도자를 강조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대중에 대한 인식은 다소 복합적이다.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바탕으로 판단, 행동한다고 믿는 편이다. 따라서 대중의 판단이 항상 올바른 것이 아닐 수 있으며, 때에 따라 선동적인 말에 현혹되기 쉬운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보는 쪽이다. 엘리트 친화적 인식론에 가깝다. 이런 인식하에서 소통과 참여는 때론 설득과 계몽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유 전 장관은 2000년 'Why not?'이란 책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은 내란과 국헌 문란의 주모자이자 5공 독재의 2인자 노태우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나라 경제를 말아먹은 김영삼씨에게 몰표를 준 것도 그들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아무리 무능한 정치가라도, 전혀 검증받지 않은 정치 초년병이라도, 김대중과 싸우기만 하면 무조건 밀어주는 TK 정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또 '후불제 민주주의'(2009년)란 책에선 “국민이 언제나 합리적인 또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속아서 최선이 아닌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고 적었다. 계몽적 리더십 유형의 지도자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에겐 호감을 사는 호소력이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든다’는 반감을 사게 될 가능성이 있다.

논리적 수호자형 리더십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논리적 수호자형 리더십’(logical guardian leadership)이다. 그는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편에 속한다. 시민들의 집단적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에게 정치인이란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다. 정치인은 ‘대중이 원하는 것’보다는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제시하고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형이다.

그는 2006년 정계 은퇴 후 한 강연에서 “직접 민주주의·참여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참여 기회를 확대시켜준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적 의미가 큰 것이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확대될 때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한국논단)고 말한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1월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선 대선 결과를 이렇게 분석했다.
“국민을 좌절에 빠뜨린 정권을 연장시켜선 안 된다는 분노가 이런 결과를 몰고 왔다. 한나라당이라는 보수 정당의 가치에 공감한 결과라기보다 현 정권을 응징한 데 따라온 것이다. 좌파들이 분발한다면 경우에 따라서 거기로 갈 수도 있는 민심이다. 정치가 이렇게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정착된 정치가 아니다.”

이 총재는 여론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국민을 선도해야 한다는 쪽이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국민이 강하게 나가면 약하게 가고, 약하게 나오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식으로 (국민과) 흥정과 거래를 하려 해선 안 된다”거나 “사회를 이끌고 가는 리더, 엘리트들에 의해 사회가 발전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인식을 뒷받침한다.

대중 조응형 리더십
정동영(민주당) 전 통일부 장관은 집단으로서의 대중의 판단은 옳다고 믿는 쪽이다. ‘국민에 대한 신뢰’니 ‘민심에 대한 확신’ 같은 용어를 즐겨 쓰는 데서도 드러난다. 정 전 장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의결 때 외신기자 회견에서 “개개인의 의사 표현은 다를 수 있으나 이를 한데 묶는 일반 의사는 대단히 현명하고 헌정 질서의 권위와 존엄을 지키는 것이 되리라 믿는다. 난 한국민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촛불시위 때도 “그리스 아크로폴리스가 광화문 광장에서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중관은 그때 그때 여론에 즉각 대응하는 형태로 구체화되곤 한다. 대북송금 특검법 통과에 대해 호남 민심이 들끓었을 때 “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지 못한 데 대해 광주, 전남 시·도민에게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한 게 한 예다. 대연정 제안에 대한 여론의 반발에 대해선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반대하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했다. 정 전 장관에게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 조응형 리더십(corresponding leadership)’의 특징이 발견된다.

정 전 장관은 대중과의 상호성을 드러냄으로써 지지와 신뢰를 확보하려 한다. 또 서민·통합·국정 경험 같은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2007년 대선 때 그는 “저는 평범한 월급쟁이 출신이다. … 대한민국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무엇인지 잘 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정치,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글로벌 CEO형 리더십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더러 대중의 의사를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받아들인다. 대중의 정치 참여에 대해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반면 엘리트 집단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편이다. 2007년 월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정 대표는 “일반 대중은 피곤한 현실 사회에서 손쉬운 해결책은 없는가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의 현실 정치에서 포퓰리즘은 노래의 후렴구처럼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중이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또 여론과는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지도자가 옳다고 믿는 것을 밀고 나가는 결단이나 판단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그는 “지도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2008년, 글로벌 리더십에 관한 특강)는 점을 강조한다. 대중 설득을 통한 계도를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여론 유도형에 가깝다.

정 대표는 전직 대기업 CEO 출신이며 현재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맡고 있다. 다른 정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제적 경험과 경제적 식견, 그리고 전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는 편이다. ‘글로벌’과 ‘공적 서비스’의 이미지를 앞세운다. 이런 특성으로 볼 때 정 대표는 ‘글로벌 CEO형 리더십’(global CEO leadership)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글로벌 리더의 요구 조건은 로컬 리더와 비교할 때 행동 반경과 시야가 넓고 커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할 것도 많고 다른 대륙, 다른 종교,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임무수행형 리더십
정세균 민주당 대표은 ‘임무수행형 리더십(operational leadership)’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정 대표는 ‘국민의 신뢰’나 ‘시민 참여’란 말을 자주 쓴다. 대중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대중 중심적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지도자는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거나 맘대로 해석해선 안 되며 그들의 의사를 대변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한 편이다. 이런 인식은 “집권여당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해내지 못하면 믿음을 얻지 못한다. … 5년 전 정권 교체를 하면서 우리가 (한나라당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 신뢰를 줬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국민들이 실망한 것이다”(2003년, 오마이뉴스)라고 말한 데서도 드러난다.

정 대표는 “정치를 하면서 배운 가장 근본적인 공리는 정치인에게 민심은 천심이란 것이다. 민심에 대해서는 토를 달 수 없다. 자기는 옳은데 국민들이 몰라준다는 태도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정치 에너지')라고도 했다.정 대표는 또 성실하고 실천적인 ‘일꾼’의 이미지와 소통과 통합을 통해 화합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을 앞세우는 편이다. 이런 이미지는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의 관리자 모습과 오버랩된다. 기업에서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 대표는 “CEO의 어떤 면모는 정치에서도 매우 유익하다”거나 “지금껏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일 자체에 몰두하려 노력해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성적 리더십
정운찬 총리는 대중은 개인적으로는 합리적 결정을 하지만 집단적으로는 비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쪽이다. 이 때문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란 전제하에서 제한적인 시민의 정치 참여는 인정한다. 엘리트 중심적 인식론에 가깝다. 이런 인식은 자신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맥이 닿아 있다. 정 총리는 저서 '가슴으로 생각하라'에서 “케인스는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직관력을 갖춘 엘리트들이 보다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민주주의는 자신과 같은 사명감을 가진 엘리트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 이상 조작되거나 사기당하거나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고 적었다.

그는 탈 계급적이고 초당파적인 지도자가 대중을 위한 정치를 하는 걸 이상적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정치인은 여론에 휩쓸리기보다 국민에게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그의 말 속엔 이런 생각들이 녹아 있다. “기본 상식이 갖춰져 있고 너무 욕심꾸러기가 아니고 어떤 이해집단하고 긴밀히 연계되지 않은…이런 자질을 갖춘 사람이 나서서 나라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국민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사회통합의 노력을 해야 한다”(2007년 CBS 라디오)고 했다. 2007년 대선 때 그는 “차기 대통령은 국가의 격을 높일 수 있는 사람, 말을 삼가고 점잖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적 고귀함과 봉사를 부각하는 ‘지성적 리더십’(intellectual leadership)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모성애적 리더십
한명숙 전 총리(민주당)는 ‘모성애적 리더십’(maternal leadership)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어머니가 자식을 신뢰하지만 때로 그 자식들이 능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보듬어주고 인도하듯이 대중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역점을 두는 리더십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에겐 잠재력이 풍부한 대중의 의견을 경청하고 의견을 수렴해 보다 나은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내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잘 사는 사람만 잘 사는 게 아니라 국가가 보살필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국가가 사회투자를 해서, 사회적 약자의 경쟁력이 떨어질 때 경쟁력 있게 만들어서, 모두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선진 사회의 그림이라고 본다”(2007년 경향신문 인터뷰)는 대목에서 그의 이런 지도자관을 엿볼 수 있다.

한 전 총리는 ‘국민의 명령’이란 말을 자주 쓴다. 대중과 정치인은 수평적 관계여야 하며, 정치인은 다수 대중의 의사인 여론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한 편이다. 2006년 총선 직후 그는 “어느 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한 특이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여야 양당 구도로 가게 됐기 때문에, 이제는 상생의 정치를 펴라는 국민의 명령을 인식하고 정치인들이 새로운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2006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고 했다. 또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선 “민초는 변화를 위해 소리 없이 끈질기게 움직이는데 지식인, 정치인 소위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말을 너무 쉽게 바꾸고 잊어버린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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