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벨상, 그 영광과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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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르웨이 국왕 등 왕실 인사, 각국 외교사절, 초청인사 1천여 하객의 뜨거운 박수 속에 그가 '평화의 메달' 을 받는 가슴뭉클한 장면을 우리는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수상연설에서 밝혔듯 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개인으로서 무한한 영광이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반(反)독재투쟁과 인권 신장에 투신한 그의 개인적 역정에 대한 보상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개인사 또한 우리 현대 정치사의 중요 부문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기쁨이기도 하다.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다' 는 노르웨이 어느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그의 용기와 야심.집념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 또한 값지다.

노벨평화상은 물론 정치인 김대중씨 개인이 받은 것이지만 그는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고 현재 대한민국에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우리의 심경이 복잡한 것도 그래서다.

정치인이 받은 노벨평화상의 의미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는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나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실패한 정치가로 끝났다.

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광과 명예가 유지될지 퇴색할지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그가 내치(內治)를 어떻게 이끄느냐에 달려 있다.

수상연설에서 金대통령 자신이 언급한 대로 '백성이 곧 하늘' 이라는 믿음과 비장한 각오로 국정을 쇄신해 난국의 위기감과 불안을 걷어내야 한다.

"무한한 책임의 시작" 이라는 수상연설의 한 구절은 바로 이 점에 대한 자각의 방증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노벨위원회는 남북간 평화노력의 역전(逆轉)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해보려는 시도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는 원칙에 충실했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대북정책이 감상적 통일지상주의 수준을 벗어나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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