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구조조정, 이대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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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윈.윈 게임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자유로운 교환 등에는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제문제는 이해상충의 양상을 띤다.

****국민 등치는 노사密約

특히 부실을 털어내는 구조조정 작업추진에 있어 윈.윈 게임의 기회가 전무하다. 놀랍게도 우리 사회에 구조조정에도 윈.윈 작전이 가능하다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그건 야물지 못한 계산이거나 착각이거나 순전히 기만 탓이다. 흔히 이런 게임은 쌍방밀약에서 제외된 국외자를 희생물로 삼는다. 예외 없이 속절없는 희생물은 고객.주주.납세자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동일한 실체인 일반국민이다.

일자리 나눠갖기도 알고 보면 사기극이다. 통독 후 고실업에 신음하던 서독의 노조에서 꾀를 냈다. 취업자들의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고 늘어나는 일자리를 실업자에게 돌려 실업률을 줄인다는 아이디어였다.

주당 임금은 종전대로 지급하는 조건이니까, 기취업자는 시간당 보수 올라 좋고 실업자는 일자리 갖게 돼 좋게 보였다.

그게 순전한 윈.윈 게임으로 판명되었나□ 실제로 코스트 푸시, 제품가 인상, 국제경쟁력 약화 등을 통해 여타 국민에게 손실이 분담됐다. 바로 이 유럽식 사기극이 조만간 한국에 상륙할 모양이다.

이미 1백10조원 가량을 삼키고 다시 4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 배정을 기다리는 금융부문의 개혁도 윈.윈 게임 착각 때문에 부진할 모양이다. 달포 전 은행경영평가위원회가 제시한 1인당 영업이익 목표가 지나치다고 6개 은행노조의 반발이 있었다 한다.

2001년 말 2억2천만원이 무거운 목표가 아니다. 판매.관리비, 대손상각비를 포함하는 광의의 '영업이익' 개념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우리만치 가벼운 목표다. 그만큼도 벌지 못하면 차라리 은행 문 닫고 공적자금 아끼는 편이 낫다.

부실은행 경영진도 책임의식을 갖고 직원을 다그쳐 이끄는 통솔력이 없다. 노조에 책잡힌 약점 때문인가. 면책 받아 경영진에 좋고, 낮은 생산성에도 자리 지켜 노조원에도 좋은 방식의 구조조정은 허구다.

그간 구조조정 추진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성실성을 의심하는 냉소적 견해를 품은 일부 국민이 있었다. 정부가 개입한 노사 협약에 흔히 이면협약 의혹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엊그제 대다수 국민을 냉소자로 만드는 사건이 터졌다. 한전 노조가 파업철회 대가로 복지기금 증액, 임금인상을 포함한 이면계약을 했다는 문건이 들통났다.

물론 사용자측은 서명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기세등등하던 노조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대목을 수상쩍게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바로 이거구나" 심증을 굳히게 하는 대목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직감하는 게 정보화 시대의 국민이다.

이런 일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니. 공기업부문에서 지난해 노조가 구조조정에 노력한 경영책임자에게 덤터기 씌운 조폐공사만 경영이 개선돼 올해 수지가 크개 개선됐을 뿐, 나머지 대부분은 겉치레 개혁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낙하산 타고 자리에 오른 사장에 좋고, 신임사장을 혼내 은근슬쩍 봉급인상한 직원에도 좋은 그런 일에 구조조정이란 이름이 아깝다. 경영부실.적자누적 등의 행태로 눈 먼 국민을 등치는 행위에는 다른 이름이 합당하다.

****위기 원천은 도덕적 해이

"한번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다시 존경을 얻지 못한다. 사실 모든 국민을 일시적으로 속이거나 일부 국민을 항상 속이기는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국민을 항상 기만할 수는 없다. " 링컨(1809~65)대통령의 말이다. 이 땅에 링컨의 말 뜻을 아는 지도자가 있는가.

금융사고 때마다 이어지는 정.관계 연루설은 무엇인가. 경제사회의 기본인 법질서와 신용질서가 붕괴되고 있다. 경제위기는 경제주체의 도덕적 해이의 만연에서 비롯된다. 도덕적 해이, 그것은 사기행위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정부가 이를 방임하거나 방조하고 있지 않나. 우선 경제부터 살리고 보자. 구조조정, 이대론 안된다. 이제야 정부가 구조조정의 핵심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그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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