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부 -시장 협력 모델, 다시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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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나는 한국이 반세기 만에 저개발 국가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하나로 발전하게 된 배경을 정보산업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정부-시장 협력 이론을 적용했다. 정부가 산업계와 협력해 시장을 만들고, 공급뿐 아니라 수요를 창출해 성장을 견인하며, 그렇게 성장한 산업계가 다시 정부와 협력해 또 다른 시장을 만드는 눈덩이 이론이다.

그런데 학생 중 한 명이 “한국은 시장경제체제를 가진 자본주의 국가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정부가 주도적으로 산업을 이끌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정부는 연구개발(R&D)을 지원해 기술 기반과 기초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계가 시장에 적용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지만, 정부는 시장경제에 충실한 체계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다른 학생이 “그러면 산업계는 정부의 주도에 종속돼 시장경제가 자유롭지 못하고, 결국 퇴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다. 바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최근 한국의 상황을 보면 기존의 정부-시장 협력 방식이 낡은 틀이 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반세기 전에 시작할 때는 좋은 모델이었던 방식이 어느 정도 성숙한 상황이 되자 거꾸로 우리를 가두어 놓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폐쇄적인 구조로 고착되고, 산업계가 안주해 혁신에 뒤처지는 것이다. 정부의 영향력이 강해 정치적인 고려에 흔들리는 것도 부정적인 영향의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 정보산업과 미디어 산업이 그런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시장 주도 모델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나친 시장 위주 방식이 경제 위기를 불러오는 것을 봤다. 시장이 자정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점에서 정부-시장 협력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청사진을 만들고 시장이 따라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시장이 커졌고,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 편입되는 폭이 넓어졌다. 또한 계획보다는 창의성이 더 중요해졌다. 벤치마킹 대상이 있어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해야 할 상황이 됐다. 우리만의 폐쇄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구조로 탈바꿈해야 한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한국이 부각되고 G20을 개최하는 것은 한국이 글로벌 시장의 주도자의 하나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자칫 자만에 빠질 수 있다. 바로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아쉽지만 예전에 성공한 방식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시장 협력 모델을 다시 생각하고 디자인하고 구축해야 한다. 같은 시기 다보스 포럼에서 세계의 리더들이 똑같은 주제를 논의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대호 인하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