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이명박 정부 3년, 오바마 정부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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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며칠 머문 동안 내 시선을 끈 칼럼은 뉴욕 타임스 고정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불신 시대의 정치(Politics in the age of distrust)’다. 속 깊은 보수 논객답게 그는 의료개혁을 중심으로 지난 1년의 오바마 정부를 찬찬히 돌아본다. 논평의 핵심은 오바마 정부가 빅뱅적 접근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불신의 반란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것보다 신뢰를 다시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브룩스는 충고한다.

어느 정부건 가장 힘든 시기는 집권 1년째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받아 쥔 성적표는 초라한 경우가 대다수다.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의제의 정당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책이 놓인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려 깊은 대처다. 집단 간 이익이 교차하는 사안인 경우 논쟁으로 대부분 시간을 허비하게 되며, 어느새 냉담해진 민심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바마 정부의 1년을 예로 들 필요도 없이 노무현 정부의 1년과 이명박 정부의 1년을 떠올려 보라.

돌아보면 이명박 정부가 집권 1년의 어려움을 넘어 기회를 잡은 것은 지난해 봄 ‘친서민 중도실용’에로의 전환이었다. 미소금융, 보금자리주택, 등록금 후불제 등을 내건 ‘친서민 중도실용’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이들에겐 ‘실용주의 정부’의 구체적 증거였다. 더불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등으로 대표되는 적극적 외교는 청계천 복원 및 대중교통 체계 개편을 상기시키는 ‘일하는 정부’의 실제적 성과였다. 지난가을 이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진 것은 바로 이러한 국정 운영에 힘입은 바 크다.

문제는 일을 많이, 적극적으로 한다고 해서 언제나 성과가 큰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정 운영은 정책 추진이라는 행정적 과제와 사회 통합이라는 정치적 과제 간 일종의 변증법을 요청한다. 아무리 유익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식 표현으론 ‘로드맵(road map)’, 현 정부식 어법으론 ‘액션 플랜(action plan)’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액션 플랜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정책 환경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유연한 대응이 중요하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보기에 최근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다원사회로의 진전이다. 다원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사안마다 견해와 해법이 충돌한다. 그 결과 이념·지역·계층 갈등이 증가하고 ‘한 국민(one nation)’ 사회가 아닌 ‘두 국민(two nations)’ 사회로서의 균열이 강화된다. 설이 돼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도 부모와 자녀가 생각이 다르고, 형제들 간에도 미묘한 정치적 긴장이 흐르는 게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 터다.

당장 세종시 문제와 사법부 판결에 대한 논란을 보라. 다가오는 6·2 지방선거, 가시화되는 남북 정상회담, 아마도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헌법 개정 등의 정치 개혁을 포함한 올해의 주요 정치 일정과 의제를 생각해 보라. 바람직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와 위임한 국민 간의 신뢰가 일차적 조건이다.

이 신뢰는 정부의 리더십과 국민의 팔로십이 결합할 때,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생산적 소통이 이뤄질 때 형성된다. 정책이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 정부는 정책 환경을 정확히 독해하고 소통과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보니 미국에서도 영화 ‘아바타’는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나비족의 인사인 ‘나는 너를 봅니다(I see you)’다. 상대와 마음이 통할 때 쓰는 말이다.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린 소통과 든든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일하는 정부’에 더해 ‘소통하고 신뢰받는 정부’로의 진화, ‘더 큰 대한민국’에 더해 ‘더 따듯한 대한민국’을 위한 정부로의 진화야말로 집권 3년째를 맞이하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