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클럽] 한국외대 실라 콘웨 교수와 'Debate Club'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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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실라 콘웨(49.여.한국 외국어대 영어과 교수)의 열댓평짜리 빌라는 토요일 저녁만 되면 한국내 외국인 교수들의 '아지트' 로 변한다.

아일랜드 국적의 콘웨 교수 집에는 주로 동유럽권이나 아프리카 출신들이 찾아와 파티를 겸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콘웨 교수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 한국 외교관들이나 그의 한국인 제자들까지 찾아 '작은 지구촌' 을 이룬다. 이들은 이 모임을 '디베이트 클럽(Debate Club)' 이라고 부른다.

지난 25일에도 어김없이 이 클럽은 문을 열었다. 일착은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한 기자와 그의 제자 유제니(22)양.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던 그는 이날 기자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첫째는 한국문화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 때문이다. 나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용띠" 라고 대답했다. 음료를 권하면서 그가 건넨 말도 "Would you like '막컬리' ?" 였다.

막걸리를 가장 좋아해 항상 비치해 두고 있다는 콘웨 교수는 한술 더 떠 "한약의 냄새와 맛이 너무 좋고 침에도 관심이 많아요. 전생에 나는 한의사였을 거예요" 라고 했다.

이어 며칠전 인사동에서 산 문갑과 길에서 주운 헌 자개장을 보여주며 즐거워했다.

특히 문갑은 값을 부르는 가게 주인에게 "억수로 비싸요, 허벌나게 비싸네요" 라며 깎아달라고 졸라 싸게 샀다고 한다.

한국말을 못하는 그이지만 '억수로' 와 '허벌나게' 라는 말을 최근 배워 요긴하게 써먹었다고 자랑이다.

더욱 놀란 것은 한국인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약 4년 전 한국에 온 그는 매주 수요일 최일도 신부가 운영하는 다일공동체에 나가 배식을 하고 있다.

또한 청량리의 '홀리 패밀리 웰페어 호스피털' 에서 갈곳 없는 노인.알콜중독자.에이즈 환자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팔.다리.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한다.

자신의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해야 학점을 받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 는 것이 콘웨 교수의 소신이라고 한다.

이윽고 외대 동료교수인 야나 비스호포바(51.여.체코).존 물라(44.케냐).린다 피츠기번(40.여.호주)과 연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에서 강의하고 있는 아지프 시디기(41.캐나다)등 이날의 논객들이 도착했다.

그동안 주로 토론해 온 내용은 '국제통화기금(IMF)' 으로 인한 약소국들의 피해' '글로벌화로 인한 세계인들의 경쟁 심화 및 이에 따른 현대인의 스트레스' 등 반(反)세계화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날의 토론 주제도 '아프리카의 빈부 격차와 그 원인' 이었다. 외대 국제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치는 물라 교수의 발제 내용은 "미국이 국가보증을 서주면서 미국계 은행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과도한 돈을 빌려주고 있으나 정부가 부패해 그 외채가 되레 발전의 족쇄가 되고 있다.

이 와중에서 아이들은 굶어죽고 있는데도 고위관료들은 개인 조종사에 댄서까지 거느리면서 호화롭게 지낸다" 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떡였지만 비스호포바는 "결국 아프리카 사람들의 책임 아니냐. 지식인들은 그동안 왜 겁쟁이처럼 이를 알면서 가만히 있었느냐" 고 반박했다.

콘웨 교수는 "예컨대 한국 입장에선 떡을 상품화해 세계시장에 파는 게 세계화" 라며 "국제화란 진정한 한국화지 미국화가 아니다" 라는 입장을 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남을 가르치거나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자유토론을 마친 뒤 다음주 주제(신은 있는가)를 정했다. 이어 흥겨운 노래시간. 한국 속의 이방인들은 이렇게 격의없는 토론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서로 정담을 나누면서 객수(客愁)를 달래고 있었다.

글.사진〓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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