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말하지 않는 숨김의 미학, 달을 그리되 달을 그리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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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09면

당나라 시인의 유명 작품 ‘비파행’의 장면을 그린 상상도. 작자와 나이 든 기생의 쓸쓸하고 외로운 심회가 저 멀리 강 가운데에 비친 가을달에 대한 묘사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국인을 모욕하는 듯한 서양의 유머가 있다. 차량 1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에 독일인들이 주차를 한다면 몇 대가 들어갈 수 있을까. 답은 100대다. 정밀함을 추구하는 독일인의 성정(性情)을 표현했다. 일본인은 몇 대를 주차할 수 있을까. 답은 120대 정도다. 독일인을 넘어서는 초정밀 마이크로 지향의 일본인을 말했다. 미국인의 주차 능력은 툭 떨어진다. 넓은 땅에 사는 만큼 70대 정도면 후하게 쳐준 셈이다. 이제 중국인이다. 이들이 주차한다면 몇 대일까. 답은 두 대다. 주차장 정문과 후문에 한 대씩을 주차해 다른 차량의 출입을 막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중국인의 무질서를 대놓고 욕하는 서양인들의 블랙 유머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회색(灰色) <5>

서구 사회에 이름이 꽤 알려진 중국의 석학이 임어당(林語堂)이다. 그도 비슷한 유머를 선보였다. 산을 가운데에 놓고 중국인이 터널을 파면 그 결과는 어떨까. 답은 “터널 두 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산 양쪽에서 서로 파고들어가 가운데를 통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애초에 잘못 파기 시작해 결국 터널 두 개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중국인에 대한 서양인의 야유는 모질다. 인종차별적 냄새도 풍겨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임어당은 중국인의 ‘대충대충 식’ 일처리를 꼬집긴 하지만 삶의 여유와 느긋함이 묻어난다.

이제 달 그리기다. 독일인이 달을 그린다면 컴퍼스를 동원해 정밀한 달의 그림을 선보일 것이다. 일본인은 달의 구체(球體)가 지닌 입체감까지 살려낸 뒤 “세계 최고”라면서 호들갑을 떨지도 모른다. 미국인이 달을 그린다면 듬뿍 물감을 묻힌 붓으로 대강 원을 이어 놓을 것이다. 중국인이 달을 그린다면 어떨까. 독일인과 일본인처럼 도형(圖形)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인처럼 대강 원 하나를 그려놓고 마는 식도 아닐 것이다. 중국인은 달을 그리되, 달을 그리지 않는다.

중국인들의 달 그리기 방법은 특이하다. 달을 그리지 않으면서 달을 그려낸다. 이른바 홍탁(烘托)의 기법이다. ‘홍운탁월(烘雲托月)’이라는 말이 있다. 홍(烘)이라는 글자는 ‘부풀리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구름을 퍼뜨려서 달을 이끌어 낸다는 말이 ‘홍운탁월’이다. 달을 그리되, 달을 먼저 그리는 것이 아니다. 달 주변에 그윽이 끼어 있는 달무리를 퍼뜨려 달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컴퍼스를 동원하거나 깡통의 밑바닥을 화지(畵紙)에 대고 끙끙거릴 필요가 없다. 퍼지는 붓으로 도화지 위에 은근한 달무리를 표시하면 달은 그 안에서 자연스레 떠오른다.

중국의 전통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법이다. 부풀리거나 퍼뜨리는 식의 선염(渲染)기법이라고 해서 홍탁과 선염을 한데 묶어 ‘홍탁선염’이라고도 하고, 속옷이라는 뜻의 친(<896F>)이라는 글자를 덧붙여 친탁(<896F>托)이라고도 한다. 친이라는 글자는 속옷이 일차적인 뜻이지만, ‘드러내다’라는 동사적 의미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
꼭 달을 그리는 데에만 이런 기법이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당(唐)대의 천재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유명한 시 ‘비파행(琵琶行)’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동쪽 배 서쪽 배 소리 없이 조용한데, 오직 강 가운데 가을달만 하얗구나(東船西舫<6084>無言, 惟見江心秋月白).”(지영재 편역·『중국시가선』·을유문화사) 백거이의 ‘비파행’은 지방의 작은 행정구역의 보잘것없는 관리로 강등된 시인이 가을에 찾아온 친구와 함께 지내다 이별하며 지은 시다.

친구를 포구에서 보내려 할 즈음에 울려 오는 비파 소리를 듣고 그 연주자를 배에 부른다. 비파를 타는 여인은 잘나갔던 서울의 기생. 나이가 들어 인기는 없어지고, 찾는 이 없어 쓸쓸했던 여인은 서울에서 멀고 먼 곳으로 시집을 오지만 결혼 생활도 원만치 않다. 그 애절한 사연을 들으면서 읊어 낸 시의 한 토막이 위의 구절이다.
우선 요란한 묘사가 없다. 강에 떠 있는 이 배 저 배에서는 아무런 말소리 없이 고요하고, 그저 강 한가운데에는 홀로 떠 있는 흰 가을달이 비친다는 풍경 묘사다. 인생 막장에 놓이다시피 한 애절한 여인의 슬픈 하소연, 그를 들으면서 솟구쳐 오르는 자신에 대한 연민, 친구와 헤어져 섭섭한 감정이 이 풍경 묘사에 다 녹아 있다. 달을 그리되, 달을 그리지 않는 홍운탁월의 방식이다.

고시(古詩)에 등장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잘생긴 남자를 묘사하고 있다. “길 가던 사람은 짐을 내려놓고 수염을 매만지며…밭을 갈던 이는 괭이와 호미를 내려놓는다….” 사람들의 눈을 끌고 있는 미남자(美男子)에 대한 묘사는 한마디도 없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인물이 얼마나 잘생겼는지를 그리고 있다. 역시 당대 시인 왕유(王維)의 시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달이 나오자 산새들 놀래어, 때때로 봄날 산골짝에서 우네(月出驚山鳥, 時鳴春澗中).” 새 우는 시끄러운 소리를 그렸지만, 실제 이 시의 진짜 주제는 산속의 고요다. 산새들이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보고서 이리저리 난리를 치는 것 같지만 실제 이 시를 통해 느끼는 것은 고요함이다.

뭔가를 직접 말하고 따지지 않는다. 직서(直敍)는 없다. 우회적이다. 주변에 낀 달무리를 그려 달을 그려내는 식이다. 강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떠오른 가을달이 그 정경을 읊은 시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잘생긴 남자에 대한 인물묘사 없이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직접적이지 않고 모두 우회적이다. 은유적이면서 비유적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지 않고 한숨 쉬어간다. 산굽이를 이리저리 돌아간다. ‘드러냄’ 없는 ‘숨김’의 미학이다. 회색의 사고, 회색의 행동은 이리저리 널려 있다. 중국인의 마음속에는.


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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