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빚더미 지자체는 파산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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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방자치단체들의 청사 신축 경쟁은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호화 논란을 빚었던 경기도 성남시(건축비 3222억원), 용인시(1974억원)에 이어 안양시가 2조여원을 들여 100층짜리 초고층 청사를 계획할 정도로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올해도 전국 15개 지자체가 신청사 짓기 대열에 뛰어든다. 지방 군청은 500억원, 중소 도시의 시청은 2000억원 규모의 건축비가 대세(大勢)라고 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정상태가 열악해 국가로부터 돈을 얻어 쓰고 있다. 아파트 등을 사면서 내는 취·등록세, 보유세인 재산세 등의 자체 수입으로는 제대로 운영할 수 없어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교부세와 보조금 등에 의존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230개 시·군·구 중 지난해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주지 못하는 곳이 절반에 달했다. 그럼에도 시장·군수·구청장들은 호화판 청사를 짓고,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축제와 드라마 세트장 등 전시성 사업과 행사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처럼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빚을 마구 끌어다 쓰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전염되고 있다. 부산 남구청은 최근 은행에서 돈을 꿔 오려고 2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새 청사를 짓는 데 437억원을 쓰느라 직원 월급 줄 돈이 모자랐다고 한다. 710억원의 빚을 진 안양은 ‘100층’을 꿈꾸고 있다. 2008년 말 기준으로 전체 시·군·구는 모두 11조원의 빚을 졌고,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지자체도 개인이나 기업과 똑같다. 빚을 지면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고, 사정이 악화되면 파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일단 쓰고 보자’는 배짱을 부리고 있다. 현행 지방교부세법은 ‘기준 재정 수입액이 기준 재정 수요액에 못 미치는 지자체에 그 미달액을 교부한다’고 규정한다. 지자체 재정이 바닥나도 중앙 정부가 일정액을 보전해 준다는 것이다. 단체장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사업에 돈을 써 빚더미에 올라앉아도 파산하는 지자체는 나오지 않는 이유다.

일본은 적자 규모가 전년도 예산의 20%를 넘는 지자체에 대해 파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홋카이도 유리바(夕張)시는 관광시설 건설에 과잉 투자하는 바람에 360억 엔(약 4600억원)의 빚을 지고 2006년 6월 파산했다. 12만 명이던 인구는 1만2000명으로 줄었고, 대폭 줄어든 공무원 급여는 전국 최저 수준이다. 미국에서도 빚이 많은 지방에는 파산을 선고한다.

방만한 운영을 하는 지자체의 빚을 국가의 돈, 즉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방식은 더 이상 곤란하다. 우리나라도 지자체의 파산 제도를 적극 검토할 시점이다. 분수를 모르고 돈을 펑펑 써대는 지자체는 거덜이 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