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맞춰 K7 따로 제작 … 차량 폭파하겠다는 제작진 겨우 설득해 다른 차로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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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이달 1일부터 간접광고가 본격적으로 허용됐다. 기존엔 간접 광고의 법적 근거가 없어 브랜드를 테이프로 가리거나, 화면에서 모자이크 처리하는 식으로 막았지만 이제는 가리지 않고 제품을 내보낼 수 있게 됐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는 최근 간접광고에 대한 보고서에서 “광고주 입장에선 국내 드라마가 해외에 수출될 경우 별도의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해외시장에 제품을 광고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형 광고제작사 중 유일하게 PPL팀을 이끄는 이노션의 임범(41·사진) 브랜드플레이스먼트팀장은 “PPL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PPL을 스토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규모 PPL 전문 대행사(에이전시)들이 난립했던 시장이 급속히 대형 광고제작사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내 PPL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됐다. 임 팀장은 2004년 공동제작을 맡았던 드라마 ‘불새’에 아이리버의 MP3 플레이어를 등장시켜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이 제품을 널리 알렸다. 주인공 이서진이 MP3 플레이어업체 부사장이라는 설정이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한 포르테 자동차,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 등장한 쏘렌토R도 임 팀장의 작품이다.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PPL로 허쉬초콜릿도 등장시켰다.

드라마 ‘아이리스’ 14회에 주인공 이병헌의 차로 등장한 K7. 그가 주차장에서 스마트키를누르자 사이드 미러가 자동으로 펴지는 장면.

가장 최근엔 드라마 ‘아이리스’가 PPL로 화제를 모았다. 제작사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롯데호텔, 서울시, 쇼핑몰 가든파이브 등 많은 기업과 기관을 끌어들였다. 그중 임 팀장의 작품은 이병헌의 차로 등장했던 기아차의 K7과 이병헌·김태희가 묵은 제주도 해비치 호텔이다. ‘아이리스’는 PPL로 제작비의 3분의 1 정도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 뒤에야 신차 생산이 시작되는 바람에 K7은 11회 촬영분부터 등장했다. 그나마 출시 전 촬영용 차량을 따로 급히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개정 법이 발효되기 전이라 로고를 테이프로 가리거나 카메라 각도를 조정해 브랜드가 안 나오게 하느라 애를 먹었다.

막바지 촬영 일정이 촉박해 제주도 신을 찍을 땐 새 차 문에 붙은 파란색 스펀지도 못 뗀 채 촬영을 했다가 나중에 허겁지겁 컴퓨터 그래픽으로 지웠다고 한다.

자동차 PPL에서는 금기 사항이 있다. 차를 폭파하면 안 된다. ‘아이리스’에서도 K7을 폭파하겠다는 제작진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결국 단종 모델인 ‘아벨라’가 대신 폭파됐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K7의 신차 발표회 때는 ‘아이리스’ 장면이 영상자료로 쓰였다.

임 팀장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대작 드라마에는 PPL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PPL 시장이 정착된 미국 할리우드의 경우 영화 제작비의 30% 정도를 PPL로 마련하고 있다. 일본의 광고회사 덴쓰는 도요타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임 팀장은 “소비자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실생활과 비슷한 상황에서 제품을 쓰는 장면이 자연스레 노출되는 것이 PPL의 강점”이라면서 “PPL 허용 첫해인 올해 협찬을 포함한 간접광고 시장 규모는 1000억원 정도로 예상한다”며 “그 규모는 해가 갈수록 급속히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지영 기자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드라마나 영화에 홍보를 원하는 제품을 등장시키는 광고 기법. 전체 프로그램 시간의 5%, 전체 화면의 4분의 1을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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