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경제부실 뿌리는 新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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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총체적 국가 위기론' 으로 시작했다.

"지금 나라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국정은 파탄이고, 국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다" 고 주장했다. 전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나타난 김대중(金大中)대통령(李漢東총리 대독)의 현실인식과 대조적이었다.

金대통령은 "국민의 정부가 (국민의)자신감과 희망을 키우고 있다" 고 했었다.

◇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李총재는 낮고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김대중 정권이 외환위기를 국가위기로, 국지적 위기를 총체적 위기로 만들고 말았다" 고 주장했다.

"우리 국민 중 '이민가고 싶다' 고 답한 사람이 43%, '이 나라가 살기좋지 않다' 는 대답이 74%" 라는 일부 여론조사를 그 예로 들었다.

국정운영의 난맥이유로 李총재는 국민의 믿음 상실, 대통령 한사람의 1인통치, 극심한 지역편중인사를 들었다. 그런 뒤 그는 "기본과 원칙을 바로세우는 국가 대혁신을 단행하라" 고 대책을 제시했다.

李총재는 이를 위해 ▶부실.졸속 개혁책임자 등 내각 총사퇴▶비상내각 구성▶지역편중인사 해소 등 5개항을 국가 혁신과제로 제시했다.

검찰 수뇌부에 대한 탄핵소추안 제출을 "정치검찰의 오욕을 청산하기 위한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내각 총사퇴를 거론하자 본회의장 민주당 의석에 있던 서영훈(徐英勳)대표.김옥두(金玉斗)총장 등 지도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야유는 없었다.

총재실 관계자는 "李총재가 최근 각계 원로.전문가를 만나본 뒤, 현 내각으로는 위기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 배경을 소개했다. 李총재가 "제1당 총재의 책무를 다했는지 반성한다" 고 말한 것도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李총재는 金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포기도 요구했다. 최병렬(崔秉烈)부총재가 잡았던 초안엔 "당적(黨籍)을 버려라" 였는데 李총재가 한단계 낮춘 것이다.

李총재의 연설에선 '원칙' '법치(法治)' 라는 단어가 일곱번 등장했다. 상대적 개념인 '1인 통치' '인치(人治)' 를 거론하는 빈도도 비슷했다.

◇'공적자금, 깨진 독에 물붓기' 〓李총재는 연설의 절반 정도를 경제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금융.기업부실의 뿌리에는 '신관치' 라는 독버섯이 있다" 며 "지난 3년간 관치경제 해악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고 주장했다.

李총재는 "정부가 50개 기업을 몰아치기식으로 무더기 퇴출시키는 것이야말로 신관치의 전형" 이라고 몰아세웠다.

특히 "과거에는 재벌의 대마불사가 대표적 도덕적 해이였다면 지금은 '공적자금을 쓰고 보자' 는 것이 대표적 도덕적 해이" 라며 깨진 독에 물붓기식의 공적자금 운영계획에 대해 金대통령이 국회에서 국민들에게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북문제와 관련, 李총재는 '전략적 상호주의' 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했다.

민주당쪽에서 李총재의 대북관을 '엄격한 상호주의' 라고 비판한 것을 의식한 것이라고 당 관계자가 설명했다. 李총재는 35분간 연설에서 단호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연설문 작성엔 崔부총재 외에 윤여준(尹汝雋)의원, 이한구(李漢久)제2정조위원장, 유승민(劉承旼)여의도연구소장 등이 관여했다.

최상연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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