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년 秘錄 북핵 2차위기] 1. <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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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7일로 북핵 2차 위기가 불거진 지 2년이 된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새 핵개발 계획을 미국에 시인하면서 생겨난 이 위기의 체감지수는 6자회담 과정을 통해 낮아졌지만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1993~94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핵 재처리 시도 움직임을 보이면서 핵 재처리 시도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국이 북핵 시설 폭격까지 검토했던 1차 위기에 비하면 2차 위기는 더 심각하고 복잡하다. 북한이 “핵 재처리를 통해 얻은 플루토늄을 무기화했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 원료를 더 얻기 위해 핵연료봉을 태우고 있다. 본사 통일문화연구소는 전·현직 정부 관계자, 외교관, 전문가의 설명을 바탕으로 2차 북핵 위기의 태동 및 전개과정, 관련국 간의 교섭을 재구성했다.

2002년 10월 2일 오후 청와대. 북한 방문을 하루 앞두고 서울에 들른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동아태 담당)가 DJ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회동했다.

이날 모임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후 21개월 만이자 처음인 미국 정부 대표단(8명)의 방북 목적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인사말이 끝나자 켈리 차관보가 예전과 달리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읽어내려갔다.

"나의 이번 임무는 북한과의 협상이 아닙니다. 미국 정보 당국이 새로 포착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HEUP) 문제를 제기하러 평양에 들어갑니다."

켈리가 전한 HEUP 문제의 요체는 북한이 플루토늄 핵 개발과 별도로 우라늄 농축을 통한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플루토늄을 포함한 핵 개발을 하지 않기로 한 북.미 제네바 합의(1994년)와 남북비핵화공동선언(92년) 등을 어긴 것으로, 북.미, 남.북 관계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충격적 사안이었다.

우리 측 관계자들은 모두 한방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 A씨는 "93~94년에 이어 2차 북핵 위기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뒤덮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말한다. 미국 대표단의 방북이 남.북, 북.일 관계에 이어 북.미 관계에도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란 정부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한반도 정세는 낙관적 기류가 팽배했었다.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7월 1일)를 시작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 (9월 17일), 신의주 경제특구 발표(9월 19일)가 잇따랐다. 따라서 북.미 관계에서도 긍정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란 분석들이 정부 안팎에서 나왔다.

당시 고위 당국자 B씨는 "켈리 차관보의 발언 강도를 접하고 '미측이 (북.일, 남.북 관계 등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방북단을 보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처음으로 (정세와 관련한) 오판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엔 미국이 켈리 방북 전에 여러 채널을 통해 전해온 북한의 HEUP 의혹을 과소평가한 데 대한 반성도 녹아 있었다.

그해 8월 28일 외교통상부 장관 집무실. 도쿄를 거쳐 방한한 존 볼턴 미 국무부 차관(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은 최성홍 장관에게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확산의 중심고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핵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새로운 위반 사항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날 다른 외교부 고위 관계자에게 북한의 HEUP 추진 정보를 전달했다. 우리 정부에 처음으로 우라늄 농축이라는 새로운 북핵 정보를 통보한 것이다. 다음날 오후 국방부 청사 장관접견실. 볼턴은 이준 장관에게 북한의 HEUP 문제를 다시 통보했다. 제2차 핵위기를 초래한 북한의 HEUP 의혹을 미국이 우리 정부에 전한 시점과 대상이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장관과의 극비 면담에서 볼턴은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에 관련해서도 중요한 언급을 했다.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의 해결에는 경제.정치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회담 관계자는 "두 사람 간 면담은 거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볼턴의 통보는 한국 정부에 비상을 걸지 못했다. 평양발 깜짝 뉴스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영환 기자.정용수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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