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매운맛이 잘 팔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9일 오후 8시 서울 상수동 홍대 전철역 뒤편 골목의 '홍초불닭' 2호점. 30평 남짓한 가게 안은 연방 땀을 닦아가며 청양고추 소스로 맵게 구운 닭다리살을 찾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점포 밖에는 20여명의 대기 고객이 줄을 서 있다. 한창 바쁠 때는 20~ 30분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 체인은 1년 만에 100호점 돌파를 앞두고 있다.

노점상의 최고 인기 품목으로 떠오른 고추.칠리소스를 넣은 '불버거(불처럼 매운 햄버거)'와 '불도그(불처럼 매운 핫도그)'에서 중국집의 고추 자장면까지-.

최근 매운맛 열풍이 거세다. 불황이 사람들의 입맛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추의 매운 캅사이신 성분이 체내에서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우울하거나 기운이 없을 때 몸이 매운맛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FC창업코리아의 강병오 대표는 "사회심리학적으로 불황 때는 자극적인 맛이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로 닭발.꼼장어.치킨 등 웬만한 외식업종도 대부분 매운 메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은 지난달 초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을 넣어 맵게 만든 '사천요리 짜파게티'를 내놓았다. 짜파게티를 1984년 출시한 이래 새로운 맛을 가미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피자헛은 최근 고추장 불고기.매운 김치 등을 첨가한 '핫 앤 스위트 피자'를 출시했다. 고추장 또한 한층 매워지고 있다. 장류업체 해찬들은 지난달 청양고추를 넣어 매운맛을 강화한 '태양초 매운 고추장'을 출시했다. 이 회사 조원영 마케팅이사는 "시장조사 결과 매운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더 매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청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대상이 만드는 '순창 태양초 매운 고추장'은 올 상반기 매출이 늘면서 시장 점유율이 5.2%까지 올랐다. 대상의 안영후 마케팅 팀장은 "최근의 매운맛 열풍은 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사회심리적 요인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초불닭 2호집에서 만난 회사원 최영석(34)씨는 "맵게 먹고 나서 땀까지 시원하게 흘리면 가슴 속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라며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식품과학부 이철 교수는 "자극적으로 매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위를 해칠 가능성도 커진다"고 충고했다.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