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창하오 외나무다리서 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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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창호9단과 창하오(常昊)9단이 맞서는 잉창치(應昌期)배 결승5번기가 1일 중국 청두(成都)의 진장(錦江)호텔에서 개막된다.

세계대회서만 11번이나 우승한 이9단이지만 應씨배 결승전은 처음이다. 대회 이틀전 이9단은 상하이(上海)를 거쳐 그 옛날 촉(蜀)의 땅이었던 청두로 들어갔다.

서울서 상하이까지는 1시간50분, 상하이에서 청두까지는 2시간40분. 비행기를 싫어하는 이9단으로서는 지루하고 괴로운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대회서 이창호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9단은 한때 컨디션이 좋지않아 여성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과 신예 이세돌3단, 그리고 중국의 저우허양(周鶴洋)8단 등에게 잇따라 덜미를 잡혀 LG정유배.배달왕기전.삼성화재배 등 중요 기전에서 연속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것은 한달 여 전의 일이고 전열을 가다듬은 이9단은 그후 내리 9연승을 달리고 있다.

이9단은 더구나 창하오9단에게 11승1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10연승을 기록 중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세계최강 이창호의 청두 행을 바라보는 눈들은 그저 덤덤하기만 하다.

應씨배에서 1회 때 조훈현9단이 우승했고 2회 때는 서봉수9단이, 3회 때는 유창혁9단이 우승했으니 이번에 이9단이 우승하면 4인방이 돌아가며 應씨배를 차지한다는 정도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창하오는 다르다. 그는 비장하고 숙연하게 이번 승부를 기다리고 있다. 대회를 앞둔 중국 청두의 팬들도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번 결승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창하오9단은 중국의 1인자요, 최고의 기대주로서 한창 뻗어나가다가 이창호라는 숙명의 적수를 만나면서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마치 11년 전 1회 應씨배 결승에서 중국의 녜웨이핑9단이 조훈현9단에게 무너지면서 끝없이 추락해버린 것과 비슷한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4회 應씨배 결승전에서 마주앉은 창하오9단은 바로 네웨이핑의 제자요, 이창호9단은 조훈현의 제자다.

창하오로서는 자신을 10연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창호에게 빚을 갚아야하고 아울러 스승의 빚도 갚아야 한다.

영화 제목 그대로 '복수혈전' 이다. 그런데 상대는 강하기 짝이 없어 소망을 이루기 힘든 상황이니 마음이 절로 비장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사는 그러나 종종 예상을 빗나간다. 돌이켜보면 11년 전 應씨배에서 약체라 무시하던 한국바둑의 조훈현9단이 결승까지 치고올라가 세계랭킹 1위 녜웨이핑9단을 꺾음으로써 세상을 얼마나 떠들썩하게 했으며 한국 팬들을 얼마나 감동시켰던가.

중국은 바로 그런 이변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2국은 3일 같은 장소. 3국부터는 상하이에서 치러진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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