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장 선거 빚만 62억 … 시달리다 수뢰 … 또 선거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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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방자치단체의 타락상이 어디까지 가려는지 걱정이다. 지난해 11월 27일 자살한 오근섭 양산시장의 비리(非理) 관련 수사에 대한 울산지방검찰청의 25일 발표를 보면 자치행정을 크게 바꾸고,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된다. 오 시장에게 선거 빚으로 남은 것이 62억원이라고 한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24억원의 뇌물을 받고 산업단지 구획을 변경해 주었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고비용 선거다. 검찰이 확인한 오 시장의 빚 62억원은 2003년과 2004년 사이에 빌린 것이다. 2004년 보궐선거 한 번에 쓴 돈 중 빚으로 남은 돈만 그 정도라는 말이다. 얼마나 더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올해 양산시장 후보의 공식 선거비용이 1억6900만원으로 책정됐으니 빚만 따져도 37배다. 그런데도 선거비용을 많이 썼다고 문제 제기가 없었던 걸 보면 다른 지역이라고 법정(法定) 한도를 지켰을지 의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단체장과 토착세력의 비리 담합구조다. 검찰이 일단 밝혀낸 것은 부동산업자들이 24억원의 뇌물을 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땅을 산업단지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270억원대의 땅을 매입해 1000억원대의 이익을 남기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부 분란만 없었다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이 밖에도 인사 비리, 인허가 관련 비리 의혹도 제기돼 왔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 시장은 지난해 예산 조기집행과 관련해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그러니 이런 지방자치단체의 비리가 양산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민선 4기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비리 혐의로 이미 물러난 사람만 36명이다. 아직도 수사 중인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지방 공기업, 문화단체 등의 자리 나눠먹기나 인사 청탁과 관련한 비리는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양산의 전임 시장도 모두 비리에 연루됐다. 한 사람은 폐기물사업 허가와 관련해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고, 한 사람은 아파트 사용 승인을 둘러싸고 뇌물을 받아 시장직을 내놨다. 민선 4기, 16년이나 지났지만 자치제가 뿌리내리기는커녕 비리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토착비리에 대한 감시체계가 더 강화돼야 한다. 자치단체마다 벌이고 있는 사업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인허가와 인사 등 중앙정부보다 주민의 생활에는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감시는 소홀하다. 중앙정치가 개입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을 굳이 정당이 공천할 필요가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그동안 선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 고비용 선거구조에서는 깨끗한 지방행정을 기대할 수 없다. 오 시장의 사례에서 보듯 많이 뿌려대면 거둬들여야 하고,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제도 개선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과 토착비리에 대한 엄중한 단속으로 지방행정의 틀을 뜯어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