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증시 궁여지책으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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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종합주가지수가 어제 한때 490선 이하로 떨어지는 등 증시가 붕괴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급히 증시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상장기업의 자사주(自社株) 취득을 용이하게 했고 보험사의 주식투자 한도도 대폭 늘렸다.

또 투신사 보유 대우 계열 회사채를 매입, 1조원을 투신사에 지급하기로 했으며 연기금 주식투자도 서둘러 이행하기로 했다.

발권력을 이용, 투신사에 주식을 강제 매입하게 했던 1989년의 12.12 증시 안정화 대책과는 달리 이번 정책은 기관투자자들에게 주식투자의 '길' 을 열어줌으로써 주식투자 수요기반을 확대하는 대책이라는 점에서 한 단계 진전됐다고 평가된다.

현재의 증시가 시장의 자율 기능에 맡기기에는 자생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보여 정부의 증시 개입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책은 단기적이며 그 효과도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된다.

주가 폭락의 근본적인 요인은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 확산 때문이며, 이는 기업.금융부실의 악순환이 확대재생산되면서 투자자들이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데서 비롯됐다.

정부의 말과는 달리 펀더멘털이 불건전한 것은 아닐까, 실물경제가 경착륙하지 않을까라는 불안도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고유가.반도체값 폭락.미국 증시의 급등락 등 국외 악재 탓도 있다.

그래서 돈은 직접금융시장에서 대거 이탈해 부동자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길을 열어도 보험사와 상장기업이 선뜻 투자할 리 없고 따라서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단기적 미봉책보다 기업과 금융부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구조조정을 가속해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 우려를 씻는 데 더욱 매진해야 한다.

물론 정부도 이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너무 화급하다고 자꾸 궁여지책을 내놓으면 오히려 투자자의 신뢰를 잃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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