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현장@전국] 도심 폐건물에 피어난 문화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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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대구시 수창동 옛 KT&G 별관 창고에서 열린 ‘2009 청년미술 프로젝트’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왼쪽 사진·대구시 제공), 1976년 건립된 이 창고는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내년 7월 전시실·공연장을 갖춘 ‘대구문화창조발전소’로 문을 연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해 12월 15일 대구시 중구 수창동 옛 KT&G 별관 창고.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창고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회 관람객들이었다. 1층에는 한국(대구)·일본·독일 출신 현대미술가의 조각·설치작품이 전시됐다. 2층에는 각종 액세서리에 패션 개념을 접목한 ‘패션아트’ 작품이 선보였다. 15일간 다녀간 사람은 5000여 명. 대구시 김대권 문화예술과장은 “전시회를 통해 창고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철거 위기에 놓인 낡은 건물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옛 건물을 ‘재활용’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 보관 창고인 KT&G 별관 창고는 1976년 건립됐다. 지하 1층, 지상 5층에 면적은 1만2150㎡. 99년 담배 생산이 중단되면서 대구시는 이 일대를 공원시설부지로 지정했다. 지역 문화계가 창고 재활용을 건의했고, 대구시가 이를 받아들였다. 대구시는 이 건물을 ‘대구문화창조발전소’로 이름 짓고 리모델링에 나섰다. 내년 7월까지 100억원을 들여 전시실과 공연장, 작가 입주 작업공간 등을 설치한다. 건물 외관은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이태현(52) 회장은 “공간이 넓고 천장도 높아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창신·숭인동 뉴타운 안에 있는 아파트를 사들여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작업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서울시는 올해 타당성 조사를 거쳐 내년에 아파트를 매입할 예정이다. 가격은 270억원(추산). 65년 완공된 동대문아파트(131가구)는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이다. 정사각형 모양의 아파트 중앙에 정원이 있는 독특한 구조다. 한때 연예인이 많이 살아 ‘연예인 아파트’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김훈 담당은 “아파트가 문화공간으로 바뀌면 인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등을 연결하는 문화·관광벨트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시 중구 은행동의 복합문화공간 ‘대전창작센터’도 재활용 시설이다. 58년 건립된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2008년 9월 개관했다. 2층 건물에 세미나실, 자료실, 야외 전시공간이 자리 잡았다.

인천항 주변 부두창고 등 낡은 건축물들도 미술관인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변신했다. 인천시는 건립된 지 60∼120년씩 된 인천항 대한통운 창고 등 13채를 2년여의 리모델링 작업 끝에 지난해 9월 개관했다.

건물 재활용에는 지자체의 ‘마케팅 실험’이 한몫하고 있다. 건물의 역사와 고풍스러운 외관에 ‘문화’를 접목해 관람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이다. 비용 절감은 부수적인 이익이다. 대구시는 KT&G 별관 창고와 같은 면적의 건물을 지을 경우 250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한다. 리모델링을 하면 150억원을 아낄 수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마다 폐건물 찾기에 나서고 있다.

경원대 홍의택(산업디자인) 교수는 “건축물의 재활용으로 눈을 돌린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그는 “산업화 과정에 지어진 건물도 훌륭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며 “이를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역사 교육장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홍권삼·김방현·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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