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빛 바랜 올림픽 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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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올림픽 메달에 한국 야구의 미래가 걸렸다.메달만 따면 프로야구는 물론 한국 야구 전체가 살아나 야구 저변이 확대되고 인기가 높아질 것이다.그래서 올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하므로 프로야구 시즌은 중단돼야 한다."

모두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한국 야구는 올림픽에서 숙적 일본을 두번이나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다.그러나 이제 겨우 2주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그날의 짜릿함은 프로야구 흥행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주말 인기 구단의 맞대결 카드에 1만명 남짓한 관중이 모이는 현실은 우리가 익숙해 있던 '메달 획득 이전의 야구' 다.

야구인들이 기대했던 '붐업' 이나 저변 확대를 동반한 '메달 획득 이후의 야구' 가 아니다.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은 한국 야구에 무엇을 남겼나. 올림픽 메달을 통해 야구팬들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 정상급' 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다.

야구가 종주국이라는 미국, 타고난 야구 천재들 쿠바, 영원한 라이벌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동메달을 따낸 결과는 그랬다.그러나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한국 야구는 아직도 일부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고교야구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벤치 능력 등은 우리가 진정한 야구 선진국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팬들은 정직하며 이런 과정을 잊지 않고 있다.

올림픽 동안 대한야구협회(아마)측에서 보여준 야구 외교 능력은 한심한 수준을 넘지 못했다.

한국에서 파견한 심판이 주요 경기에서 주심 한번 배정받지 못한 것이나 일부 정보분석 요원들이 현지에서 암표상 노릇까지 했던 것은 기가 찰 노릇이다.

프로는 '메달 획득 이후의 야구' 를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그저 선수들이 잘해 메달만 따면 야구 인기가 저절로 살아날 것이라고 자만했던 것 같다.

메이저리그는 1998년 시들어가던 야구 열기를 되살려준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새미 소사(시카고 컵스)가 한 시즌 내내 홈런 경쟁을 벌이며 팬들을 끌어모으자 커미셔너의 이름으로 "당신들의 위대한 시즌에 경의를 표한다" 는 광고를 냈었다.

우리도 한.일전 완투승의 주인공 구대성(한화)과 결승타를 때린 이승엽(삼성)을 모델로 내세우면 어떨까. 꼭 광고는 아니더라도 프로모션을 위해 '뭔가' 를 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처럼 간절히 원했던 메달을 따냈는데 박수만으로 갈증이 해소됐을까. 한국야구위원회(KBO) 박용오 총재는 "팬들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야구를 하겠다" 고 약속한 바 있다.

올림픽 동메달이 남긴 것은 '숙제' 다.동메달을 착지점이 아닌 '뜀틀' 로 삼아 뛰어오르라는 채찍질이다.

스포츠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교훈을 남겼고, 벼락치기하듯 순위만 3위가 된다고 야구 인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 줬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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