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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판결과 ‘독단’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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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90년대 중반, 법원을 출입할 때였다. 당시 법원 출입기자들은 수십 개의 방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재판을 골라 들어가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주요 사건이 아닌 경우엔 법관의 성향에 따라 기사의 무게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모든 언론이 관심을 갖는 주요 사건이 아닌 경우 웬만하면 타사 기자들이 없는 법정을 찾았다. 경쟁지 기자들이 모르는 단독 기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기자가 몰리는 법정이 있었다. 한 형사단독 판사의 재판이었다.

대개 형사단독에 걸려 있는 사건은 판사 세 명이 재판하는 형사합의부 사건에 비해 기사화되는 경우가 적었다. 유명 정치인, 기업인 사건이나 연쇄살인 같은 강력사건은 대부분 합의부에 배당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독판사는 유독 기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법정 최고형을 내리거나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자 입장에선 한마디로 화끈한 법관이었다. 하지만 법원 내의 평가는 엇갈렸다. “독창적인 판결을 많이 낸다”는 긍정적 반응이 있는 반면 “언론을 의식해 너무 튀려고 하는 것 같다”는 부정적 평가도 많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무죄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일부에선 이념논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법관 출신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과거 정권 10년의 이념적으로 좌편향된 경향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만 놓고 보면 일부 법관의 이념문제라기보다는 단독판사의 제도적 문제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친분 있는 한 법관에게 “이번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단독 판결이니 가능하지 합의부 재판이었으면 다른 법관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독판사의 문제점은 법관 인사제도 개선이 논의될 때마다 도마에 올랐다. 평균 연령 30대 중반의 경륜 없는 단독판사들이 개인 성향에 따라 판결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산하에 양형위원회를 두어 법관들 간의 양형 편차를 줄이기 위한 개선안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단독판사들의 ‘튀는 판결’은 점점 잦아지는 경향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수뇌부도 문제점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법원에서 단독판사는 사법부 개혁을 선도했다는 상징성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이다. 1993년 박시환 대법관 등이 주도했던 서울지법 민사단독 판사들의 서명파동은 법원 인사제도를 바꿨다.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 파문을 주도한 세력도 단독판사들이었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단독판사들의 판결에 선배 법관들이 조언을 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단독법관들이 마음껏 누리는 ‘독립성’은 자칫 독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대법관들도 중요한 사건에 대해선 토론을 벌이고 전원합의체로 결론을 낸다. 경륜이 짧은 단독판사들이 아무런 논의 과정이나 여과 장치 없이 판결할 경우 독립성과 자의성(恣意性)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된다.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법원 스스로 제도 개선에 착수할 때다.

정철근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