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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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중앙신인문학상은 그 응모자의 수에 있어서나 응모작의 수준에 있어서 압도적인 향상을 보여주었다.

결심에 넘겨진 23편의 작품들은 어느 것을 선택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고 확신한다.

모든 문학상이 그런 것처럼 한편의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1차로 백영옥의 '손가락' , 송미영의 '풍장' , 박성태의 '마네킹을 사랑한 남자' , 송은영의 '야누스의 얼굴' , 윤복순의 '가족사진' , 김성칠의 '크레파스' , 김도연의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8편의 작품을 골랐다.

이 가운데 '손가락' 은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잘려나간 손가락의 이미지를 화자의 삶과 연결시킨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결말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추상성 때문에 작품의 주제를 흐려 놓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풍장' 은 중학교 교감으로 은퇴한 아버지가 먼 산을 바라보며 나무처럼 서서 서서히 사그라져 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렸으나 그 구체성을 드러낼 이야기가 없다는 아쉬움을 주었다.

'마네킹을 사랑한 남자' 는 고아출신의 주인공이 스턴트맨으로 살아가는 삶과 선아를 찾고자 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소설적 장치에 의해 형상화하고 있으나 그 구성의 필연성이 약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미네완카' 는 틀니와 같은 구체적 사물을 통해 주인공이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의 이율배반을 소설의 기법으로 등장시킨 재능을 높이 살 수 있었지만 전반부의 설정이 진부하다는 평을 받았다.

남은 4편의 작품 중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서 우리는 상당한 시간 동안 토론을 거치면서 작품을 다시 읽으며 최종적으로 2편을 가지고 논하기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야누스의 얼굴' 은 추악한 육체의 얼굴을 가진 삶과 추악한 영혼의 얼굴을 가진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두 인물의 설정 자체가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어서, 그리고 '가족사진' 은 자폐아를 기르는 어머니의 삶과 고통을 절도 있게 그리고 있지만 '지현'이라는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라는 주제가 설득력을 잃고 있어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최종적으로 남은 두 편의 작품 가운데 노근리 사건을 다룬 '크레파스' 에서 우리는 신인다운 패기와 일상성을 뛰어 넘는 역사성을 높이 산 반면에 자신의 분노를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는 의욕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는 신인문학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주제의 새로움이 미흡한 반면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남과 헤어짐의 아픔을 내면화한 작가적 재능이 높이 평가되었다.

당선작을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 토론의 과정을 거친 결과 작품의 완성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로 하고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를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낙선자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치수.이문구.박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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