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지 국립발레단장 '나는…' 에세이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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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사진)이 최근 회고 에세이 '나는 인생의 프리마로 춤춘다' (산성미디어)를 냈다.

재일교포 출신 발레리나인 최단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국내 발레계에 들어와 어떻게 '왕따' 를 이겨내고 1996년 국립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단장직에 올라 스타무용수를 키워내고 발레 대중화를 이뤄냈는지를 솔직하게 적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대를 떠난 93년까지 인생 대부분을 발레리나로 살아온 최단장이니만큼 책은 대부분 발레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남편과의 드라마틱한 결혼이야기, 그러기에 더 참기 어려웠던 가정불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두 딸을 낳고서도 춤을 췄던 사연 등은 발레와 무관한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잘 알려진대로 최단장은 19세 때 일본 국비장학생에 선발될 때까지 최태지가 아닌 오오타니 야스에로 살아왔다.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에야 장학생 선발 자격을 일본인으로 제한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때부터 한국인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살아 왔다.

자비로 떠난 프랑스 유학에서 최단장은 새로운 발견을 했다. '내 삶 속에 발레가 들어온 것이지, 내가 발레를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 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한참 언니뻘인 동료들을 제치고 프리마 발레리나를 맡게 되자 최단장은 늘 따돌림을 당했다.

갈비뼈에 금이 간 상태에서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무대에 서는 등 발레리나로서의 삶은 외형적인 화려함만큼이나 고통도 깊었다.

오직 발레를 위해서 외톨이 생활을 감수한 셈이다. 하지만 파리 생활은 발레 외에 다른 인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기였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두살 연하의 동성동본 남편과는 미국에서 지나가는 행인 두 사람을 증인삼아 결혼을 올리고 꿈같은 신혼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큰딸을 낳은후 잠시 한눈을 파는 남편에 좌절하고 혼자서 87년 귀국해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전에도 국립발레단과 공연한 적이 있지만 막상 입단하니 일본에서보다 더한 '왕따'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간다는 자세로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사건건 정면으로 대립하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일에 더 몰두함으로써 오히려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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