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이시대 명문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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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지난 주 우리시대 명문장론을 한차례 개진한 뒤 생각 이상의 독자 반응을 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독자와 전문가 사이의 관심영역이 판이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왔습니다.

'문화권력' 인 김훈의 문학 에세이 '자전거 여행' 을 그렇게 드러내놓고 공격해도 괜챦은가를 물으며 저자의 반응을 묻는 쪽은 주로 기자 주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서평 저널리즘에 충실하려한 그 글에 대한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저자에게이미 전한 '반론 환영' 역시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후속 칼럼은 상당수 일반독자들이 훌륭한 문장의 사례를 더 많이 예시해주길 바랬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 한 분은 안병무 선생의 책이 혹시 절판된 것은 아닌가를 문의해왔습니다.

또 30대 여성독자 한분은 이우환의 '시간의 여울' 을 구하려 출판사 창고까지 뒤졌다며, 기자의 것이라도 대여해달다고 하소연 해왔습니다.

다시 밝히지만 당시 글은 스타일(문체)에 대한 기자의 취향 내지 포폄(褒貶)이 아닙니다. 우리네 삶을 보듬어온 근현대 문학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도 다릅니다.

근대적 우리말 문장의 모델 창출이라는 자기 역할을 다해 달라는 주문일 뿐이지요. 기회에 삶과 사유가 잘 녹아있는 좋은 문장의 사례를 일부 소개할까 합니다.

문학의 경우 산문정신에 가장 근접한 작가로는 단연 염상섭입니다. 대중적 인기는 덜하지만, '그가 없더라면 문학사가 한결 가난했을 것' 이라는 평론가 유종호선생의 언명에 기자는 백번 공감합니다. 그 의발을 이은 것은 소설가 김원우라고 봅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도 번역투 문체에 오염되지 않은 토종 우리말의 보물단지이죠. 박완서의 근작으로는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와 지난해 단편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은 정말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시인들이 쓴 산문도 적지 않습니다. 전집이 모두 나와있는 정지용.김기림에 이어 김수영의 산문은 지금도 낡지 않았고, 지난해 나온 신경림 산문 '시인을 찾아서' 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밖에 위엄있는 삶의 태도가 문장으로 녹아있는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나님' , 조선후기 유학자 이덕무(李德懋)의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등이 기억납니다.

그러고 보니 철학 분야 책을 단 한권도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하지요. 현대의 우리말로 사유한 철학행위의 흔적이 드무니 훌륭한 문장도 없는 것입니다.

단 중견학자로 '탈현대의 사회철학'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등을 펴낸 이진우(계명대)교수, '삶 죽음 운명' 등 신간을 펴낸 이정우(전 서강대)교수, 그리고 '하이데거와 마음의 철학' 을 펴낸 김형효(정문연)교수등의 작업은 일단 예외입니다. 그분들은 모두 10여종의 저술을 갖고 있습니다.

노염이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 작심하고 읽으시며 왜 그들의 작업이 가능성 높은 문장으로 읽히나를 확인해 보시지요.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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