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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맞은 '경술국치',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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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 민족은 결단코 ‘망국의 루저’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바로 그것이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강제로 끌려 들어간 동굴 안에서 눈을 완전히 감았느냐, 반쯤 감았느냐 하는 점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기보다 다시는 그런 어두움 속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고 비장한 결의를 다져야 한다는 의미다. 경술국치를 생각할 때의 화두가 ‘항일(抗日)’보다 ‘극일(克日)’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술국치는 몇몇 사람이 나라를 팔아먹기로 작당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나라라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지 ‘팔아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아넘겼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주권을 가진 나라가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 매국노들에 의해 나라가 팔아넘겨진 것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빼앗긴 이유는 간단하다. 힘과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나라를 빼앗긴 ‘루저’가 된 다음 ‘친일’을 했느냐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보다는 주권을 가진 ‘위너’로서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인재대국을 만들고 ‘사람 모으기’에 나서야 한다.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우리 전자업계가 최근 일본을 따돌리게 된 것도 외국에까지 손을 뻗쳐 인재를 모으는 데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 모으기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민주화가 되면서 6·25 때 부역했다는 과거를 가진 사람들의 커넥션을 끊임없이 추궁하는 연좌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께 나온 친일인사 명단은 인재대국을 위한 ‘덧셈 사고’가 아니라 ‘뺄셈 사고’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어 유감이다. 그것은 큰 대(大)자 ‘대한민국’을 만드는 대신 작을 소(小)자 ‘소한민국’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극일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가꾸며 지키기 위해 문화·교육·언론·종교 영역에서 헌신한 인재들을 ‘친일파’라고 하여 ‘뺄셈 방식’으로 공동체에서 추방하고 나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는가. 망국의 아픔을 교훈으로 삼겠다면 공동체를 갈가리 찢어놓는 ‘극소화의 사고’보다 공동체의 질과 양을 풍요하게 만드는 ‘극대화의 사고’를 해야 한다. ‘극대화의 멘탈리티’가 아니라 ‘극소화의 멘탈리티’로는 지속가능성을 가진 ‘위너’의 공동체를 만들 수 없으며, 날로 그 기세를 더해가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형 ‘루저’가 되기 십상인 우리나라를 굳건하게 지켜낼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조선시대의 영웅은 많고 또 그들을 기리는 아이콘도 많다. ‘퇴계로’니 ‘충무로’니 하는 서울의 길들을 보라. 하지만 지난 65년간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가꾸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인재들을 영웅으로 삼는 데는 인색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功)은 버려두고 과(過)만 보며 덧셈 사고보다 뺄셈 사고로 일관한 결과다. 그러나 산업황무지 시절 해외에서 인재들을 데려와 산업강국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을 상기한다면, 대한민국을 만들고 가꾸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이왕의 인재들을 과감히 ‘큰바위 얼굴’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본과 중국에 맞서 천년 동안 융성할 부국강병의 국가를 만드는 정신적 기틀이 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망국의 경술국치를 되새기는 ‘위너’의 마음가짐일 터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