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미끄러져 사고 날 뻔…기다리는 승객위해 끝까지 운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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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하루였죠. 하지만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일 서울 우이동에서 중앙대까지 운행하는 151번 버스의 첫차 당번은 강관구(48·사진)씨였다. 강씨가 우이동 차고지를 출발한 것은 오전 4시. 을지로, 서울역, 용산, 흑석동…. 운전대를 잡은 지 40여 분 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곧 시야가 안 보일 정도로 차창에 눈발이 들이쳤다. 어렵게 차고지로 돌아온 것은 2시간40분 만인 오전 6시40분이었다. 40여 분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버스를 몰고 나왔다. 이미 도로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출근길 승용차들과 뒤섞인데다 제설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역 부근 등 도심 지역은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우이동과 미아동 등 외곽지역은 제설차량이 보이지 않았고, 빙판 위를 달리는 듯했다. 강씨는 “미아동 등은 고갯길이 많아 버스가 올라가지도 못했다”며 “길이 미끄러울 뿐 아니라 승용차들도 많아 속도를 전혀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미끄러져 사고를 낼 뻔했지만 강씨는 승객 보호를 위해 운전대를 다잡았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쳐가는 게 편했지만 강씨는 그러지 않았다. “정류장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손님들을 그냥 놔두고 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버스는 낮 12시가 다 돼서야 우이동 차고지에 돌아올 수 있었다. 평소보다 1시간30분 정도 지연된 셈이었다. 시간은 늦었지만 다친 승객은 없었다.

강씨는 다시 이날 낮 12시20분 버스를 몰고 나가야 했다. 이번엔 보도블록과 도로 사이에 눈 장벽이 쌓여 있었다. 그는 정류소 앞에 놓여진 포대에서 염화칼슘을 종이컵에 담아 버스 앞뒤 출입문에 뿌렸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손님들이 버스에 타거나 내릴 때 넘어지기 쉽습니다. 20년 운전 노하우이지요.”

강씨는 뒷목에 걸쳐진 마이크로 손님이 탈 때마다 “눈은 올라타서 터세요. 그래야 안 미끄러집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목소리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폭설 때는 승객이 버스를 잡기 위해 도로에 나올 경우 자칫 교통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날 하루 종일 폭설 속 도로를 달린 강씨는 “승객들을 안전하게 그분들의 일터로 모시는 게 오늘 나의 임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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