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노조 극한대치 요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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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보험료 납부일인데 고지서가 안와 전화했더니 파업 중이라는 안내 녹음과 함께 바쁘면 직접 찾아오라고 하는데 말이 되느냐. "

의료보험 가입자인 유모씨는 28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했다가 "파업 때문에 민원처리가 안된다" 는 투의 답변을 듣고 분노하는 글을 공단 홈페이지에 올렸다.

공단의 한 조직인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옛 지역의료보험노조)이 지난달 28일 파업을 시작한지 두달째에 접어들면서 민원인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투입 직전인 지난달 30일 밤 노조원들이 박태영(朴泰榮)공단이사장을 포함한 간부들을 화장실 등에 감금, 위협한 사태 이후 요지경 같은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 중징계 릴레이=공단은 28일 무소신.무책임한 근무태도.직무수행능력 부족.무사안일한 자세를 이유로 지역본부장.지사장.부장 등 간부 32명을 무더기로 직위해제했다.

노조의 행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의 한 관계자는 "노조 관리책임은 임원들이 훨씬 큰데 아랫사람만 징계하느냐" 고 불만을 보였다.

공단은 폭력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지난 10일 김한상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35명을 면직하고 14명을 3개월 정직(停職)처분했다.

공단은 21일 추가로 노조원 58명을 직위해제했다. 노조원만 1백7명을 중징계한 것. 공단측은 민원인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례없이 6백여명의 대체인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 자금까지 동원한 비방전=공단은 노조가 朴이사장이 자신의 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비난광고를 수차례 내자 일일이 광고나 보도자료로 응수했다.

또 노조원들이 통신망을 통해 욕설을 일삼는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노조원들이 직장에 복귀하려는 직원들과 직장의보노조 직원들을 집단 따돌림한다' 며 피해 직원들이 소송을 내려 하면 변호사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노조원들이 가정으로 전화협박하는 경우가 많아 발신지 추적장치 설치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공단측은 "이번 기회에 경영진 위에 군림하려는 노조의 잘못을 바로잡아 조직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해 달라" 고 말했다.

◇ 대화는 뒷전=노조집행부는 지난달 30일의 폭력행위에 대해 자성하는 뜻은 밝히지 않고 있다. 수차례의 성명을 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노조는 朴이사장의 퇴진을, 공단은 대국민 사과와 즉각 업무복귀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며 등을 돌리고 있다. 상대방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다만 노조 관계자는 "조건없는 대화를 제의하고 있으며 대화의 장에서 폭력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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