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 민생법안 후 교섭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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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로 꼬인 정국이 큰 가닥에서 풀려가는 모습이어서 다행스럽다.

휴가 중이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급거 상경해 유감표명을 했고, 이를 한나라당이 사과한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국회 파행 정국의 큰 장애물은 제거된 셈이다.

金대통령의 신속한 대응과 한나라당측의 유연한 자세를 일단 평가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하루빨리 국회정상화에 나서고, 상생(相生)정치를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

金대통령이 휴가를 중단하고 민주당 간부들을 호출, 국회 파행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등 일련의 과정은 '역대 대통령들에게선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추경예산안.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정부차원에서 시급한 안건들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민 여론을 존중하고 국회를 중시하고 있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물론 여당의 날치기 처리에 대해 보다 분명한 대국민사과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金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자신들이 요구한 사과로 간주,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낸 한나라당의 대처도 보기 좋았다.

사실 "의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거나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대통령의 '유감' 속엔 여당의 날치기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회의저지 행태까지 포함돼 있다.

과거 같은 대결 자세와 편협함이었다면 오히려 시비를 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일축할 경우 경색정국을 풀 묘수가 당장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화답은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하겠다.

일단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여야는 미적거릴 게 아니라 당장 임시국회를 소집해야 한다. 약사법 개정안.금융지주회사법안 등 민생법안들을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운영위에서 날치기처리된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걸림돌이라면 이를 떼어내 민생법안부터 다루는 분리처리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자민련의 교섭단체 관련 국회법 개정안은 시급성보다는 여야간 합의가 중시되는 사안이다. 어느 일방의 단독처리는 대결구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당 입장을 들여다보면 합의가 결코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비록 한나라당 당론이 '양당체제 유지' 이긴 하지만 미묘한 시점에 JP를 만난 李총재의 행동은 이미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인정해주겠다는 묵시적 양해로 읽혀진 게 사실이다.

'李총재와 일정 부분 상의했다' 는 鄭총무의 발언으로 봐서도 그러한 인상은 더욱 짙다. 한나라당은 이제 자민련 문제에 분명한 태도를 표명하고, 아울러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밀약설의 내막에 대해서도 국민이 헷갈리지 않도록 명쾌한 입장정리를 해야 한다.

여야 지도부의 유연한 움직임과 함께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국회 파행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정쟁(政爭)관련 요구나 지시엔 양심에 따라 저항한다' 는 결의문을 추진한다는 소식도 신선하다. 이같은 움직임들이 진정한 새 정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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