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SOFA 개정 호혜원칙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협상이 다음달 초 재개된다. 그러나 협상에 앞서 미국이 우리측에 전달한 개정안에서는 조속하고 원만한 협상타결 의지가 엿보이지 않아 유감이다.

SOFA 문제로 우리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려면 주한미군도 이중잣대를 적용받거나 다른 지역 주둔 미군에 비해 특혜를 누리려 해선 안된다.

특히 사흘 전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이 비공개로 국회에 보고한 미국측 협상안 중 주한미군사령관의 미군 범죄인 인도 요구권이나 경범죄 재판관할권 이양 요구 등은 우리 주권이 관련된 사안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인도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SOFA 관련 규정의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규정까지 포함돼 있다니 아무리 협상용이지만 너무 오만하지 않은가.

미국이 관련 규정을 무력화한다면 우리 쪽에서는 "차제에 불평등 조항 전부를 무력화하자" 는 여론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안그래도 정부 일각에서는 연말 미국 대선 때문에 이번 협상도 결실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형평성과 한국의 주권마저 가볍게 본 미국측 협상안은 개정요구에 대한 '완곡한 거절' 로 해석될 소지마저 있다.

우리는 지난 55년간 미군이 주둔하면서 점차 벌어진 미군기지 담장 '안' 과 '밖' 의 격차를 해소하는 문제도 이번 협상의 중요한 의제여야 한다고 본다.

담장 안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바깥의 한국사회는 인권.노동.환경.재산권에 걸쳐 엄청나게 변했다.

이제는 미군기지가 한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고, 멋대로 폐수를 배출하고, 주둔 목적에 어긋나는 수익사업을 벌이는 것을 곱게 보아넘기지 않는 시대가 됐다.

기지사용권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언제까지 검역도 받지 않고 농수산물을 미군기지에 들여올 수 있다고 보는가.

이런 문제들이 협상테이블에서 조목조목 논의돼야 할 형편에 주권 침해적 내용을 담은 협상안을 제시하는 것은 협상의지 자체를 의심케 한다.

최근 남북화해 시대로 방향을 튼 한반도 정세에 맞춰 주한미군의 위상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 합참도 최근의 전략보고서에서 해외주둔 미군을 기존의 유럽 중심에서 아시아 위주로 전환할 필요성을 밝혔다.

SOFA 개정도 미국이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고, 우리도 동북아 안정에 기여하는 미군의 역할을 인정하고 지원한다는 호혜적 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일방통행식 협상태도는 자칫 미군 주둔의 의의만 깎아내릴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