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NMD는 시대착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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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핵폭탄을 실은 대륙간 탄도탄이 마하25의 속력으로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온다. 미사일 탐지 위성이 그것을 탐지한다.

알래스카에서 즉각 발사된 요격미사일이 대기권 밖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영격(迎擊)하여 산산조각으로 만든다. 미국 본토는 무사하다.

이것이 문제의 미국본토 방위를 위한 요격미사일이다. 공상과학소설 같은 멋진 이야기다. 그러나 대륙간 탄도탄으로 미국을 공격하는 간큰 나라의 대표로 북한이 지목된 것은 멋진 이야기의 김을 빼고도 남는다.

*** 北 미사일 전제로 한 전략

미국 정보기관의 계산으로는 북한이 2005년까지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다. 북한이 1998년 여름 일본열도 너머 태평양으로 발사한 대포동 1호가 미국본토에 도달하려면 생물.화학무기 같은 가벼운 탄두밖에 싣지 못하지만 대포동 2호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

미국이 본토방위 요격미사일(NMD) 20기를 2005년까지 알래스카에 실전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전략적 근거는 간단하다.

두개의 슈퍼파워가 핵무기로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냉전시대에 세계는 안전했다. 지금은 북한.이란.이라크 같은 작은 불량국가들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세계의 안정을 위협한다.

특히 북한이 2005년까지, 이란이 5년에서 10년 안에, 그리고 이라크가 15년 안에 대륙간 탄도탄 실험에 성공하면 미국본토는 무방비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격미사일의 개발이 급한데 요격미사일 개발은 72년 소련과의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 위반이다.

클린턴 정부는 러시아에 요격미사일 기술을 나누어 줄테니 72년협정을 고치자고 회유하지만 경제난의 깊은 수렁에 빠진 러시아는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클린턴은 제한된 요격미사일 개발은 협정위반이 아니라는 법률해석에 힘입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본토방위 요격미사일 구상은 레이건한테서 나왔다. 그는 83년 과학자들에게 소련의 미사일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데 재능을 동원해달라고 촉구했다. 그것이 나중에 전략방위개념(SDI)으로 발전한 최고 1조달러 예산의 '별들의 전쟁' 구상이다.

레이건으로부터 냉전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임 대통령들은 지난 15년 동안 미사일 잡는 미사일 개발에 6백억달러를 썼지만 요격미사일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소련붕괴와 냉전종식으로 그런 미사일개발에 대한 전반적인 열의가 식었다. 민주당과 클린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치라는 괴물은 합리적인 사고를 오래 허용하지 않을 때가 많다. 클린턴은 98년 르윈스키사건으로 공화당 의회가 그를 탄핵할 때 공화당이 좋아하는 요격미사일을 개발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런 그의 등을 힘껏 떠민 것이 그해 여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다.

지금은 대통령선거전에서 공화당의 부시후보가 '별들의 전쟁' 구상을 레이건이 생각했던 규모대로 되살리자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미국방어에 성의가 없다는 누명을 경계하여 제한된 요격미사일 개발에 찬성하면서 결정을 클린턴에게 맡긴다는 입장이다.

*** 한반도 최근 상황과 안 맞아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결과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받아들였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 특히 김정일(金正日)의 북한판 '햇볕정책' 은 국제안보환경을 바꿔놓으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의 요격미사일 개발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린다. 러시아.중국.유럽이 걱정하는 대로 미국의 요격미사일 개발은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할 위험을 안고 있다.

당초 요격미사일 개발의 정당성의 근거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었다면 미국은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북한의 변화를 더 지켜봐야 한다.

요격미사일 가동을 위해 북한의 미사일 동향을 탐지하는 미국의 해상기지가 동해에 상주하는 상황과 한반도사태의 새로운 전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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