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화학무기 원료를 북한에 수출했다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화학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한국산 시안화나트륨(청화소다)의 북한 유입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어제 국내 한 업체가 지난해 이 물질 107t을 불법으로 중국을 거쳐 북한에 수출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태국에선 70여t이 북한으로 재수출되려다 미국 정보 라인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다.

독성이 강한 시안화나트륨은 신경작용제인 '타분'으로 전용될 수 있다. 그래서 국제적인 다자수출통제체제인 '호주그룹'(AG)의 규정에 따라 수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전략물자다. 명시돼있지는 않지만 북한처럼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국가들에는 수출이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양이 불법적으로 북한에 수출된 것은 관리 체제에 큰 구멍이 나 있다는 증거다. 화학무기가 될 수 있는 이런 물질을 북한에 넘긴다는 것은 스스로 발등을 찍는 일인데도 소홀하게 방치했으니 정부의 책임이 크다.

무엇보다 석연치 않은 것은 정부의 대응자세다. 정부는 이런 불법 수출의 진상을 다 알고 있었으나 철저히 입을 다물어 왔기 때문이다. 태국 건은 국회의원이 문건을 제시하자 마지못해 인정했다. 107t 건도 신문에 보도되자 부랴부랴 브리핑을 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불법 유출 사실을 확인하고도 1년 동안이나 국민에게는 함구로 일관했다.

정부는 이제 이 사건을 왜 은폐해 왔는지 그 내막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북한에 넘어간 그 물질이 무슨 목적에 어떻게 이용되는지도 뒤늦었지만 규명해야 한다.

최근 우라늄 농축 등 우리의 '과거사'가 계속 드러나고 있어 국민은 뒤숭숭해 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터져나온 이 사건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뒤늦게 구차한 해명을 하는 식으로 덮고 가려 하지 말라. 필요하다면 핵심 대사관에 전담관을 두는 등 업체의 불법 수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도 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