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영화산업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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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페데리코 펠리니.비토리오 데 시카.피에로 파올로 파졸리니.루치노 비스콘티.로베르토 로셀리니…. 전후 세계 영화계를 이끌다 타계한 이들 이탈리아 명감독들이 지금 고국 영화계를 둘러본다면 어떤 감회에 젖을까.

지금 이탈리아에서는 자국 영화의 수준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영화계 종사자들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밀려 자국 영화가 고사 위기에 놓여 있는데도 영화 관계자들이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이 '인생은 아름다워' 로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이탈리아인들은 은근히 자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자국 영화가 한편도 오르지 못하자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황금기였던 1960년대 연 3백여 편에 이르렀던 이탈리아 영화는 지금은 연 1백편도 채 안된다. 그것도 배급조직을 확보하기 어렵고, 힘들게 극장을 잡았다 해도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개봉 며칠 만에 막을 내리기 일쑤다. 올들어 지금까지 이탈리아 영화 티켓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이탈리아 영화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는 시나리오 작가들을 훈련하고 감독들의 머리에서 훌륭한 작품을 짜낼 수 있는 권위 있는 프로듀서의 부재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90년 주제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천국' 을 47분가량 잘라 그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게 한 프로듀서 프랑코 크리스탈디 같은 인물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제작공정을 총괄할 인물이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지금도 영화를 찍고 있지만 자금줄은 미국의 미라맥스다. 이같은 현실은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관심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이탈리아에는 그의 재능을 충분히 살려줄 자금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한때 이탈리아 영화관계자들은 할리우드의 상업주의를 맹비난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이탈리아 영화계의 자만과 비상업적인 풍토를 지적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의 영화진흥 노력도 비난의 표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이탈리아 정부가 대출 및 지원 형식으로 영화계에 할당한 예산은 약 6천만달러(약6백90억원)로 프랑스보다도 떨어진다.

그래서 이탈리아 영화의 제작비는 평균 2백만달러선. 제작비가 적다 보니 자연히 저예산의 아트영화나 돈벌이 되는 저질 코미디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탈리아 영화팬들의 안타까움을 더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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