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강원용 목사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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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강원용 목사의 이력을 보면 그의 발자취의 방대함과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기조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며, 그 활동상은 곧 신앙의 실천이었다.

일제하 북한 땅에서 태어난 姜목사는 1945년 해방 직후 기독교를 박해하는 공산주의 치하를 떠나 서울로 내려왔다.

그는 고 김재준 목사 등과 함께 '선린형제단' (선한 이웃의 형제들이란 뜻)을 만들어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45년말 이들이 전도의 편의를 위해 만든 '선린형제단 전도관' 이 경동교회의 전신. 姜목사는 뒤늦게 한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해 49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姜목사의 인생에 가장 큰 전기는 6.25 전쟁.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던 그는 캐나다 기독학생회의 초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1년을 유학하고 미국으로 옮겨 유니온 신학교 등에서 신학과 사회윤리를 공부한 뒤 57년 귀국, 58년 은퇴한 金목사의 뒤를 이어 경동교회를 이끌어왔다.

姜목사는 이후 기독교 신앙을 사회 속에 구현하고자 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가장 먼저 시작한 대외적 활동은 59년 신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젊은 학자들과 함께 '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 를 조직한 일이다.

60, 70년대라는 어두운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는 우리 사회의 양심을 대변해왔다.

姜목사는 이어 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를 모체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65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를 만들었다.

姜목사의 활동 중 빠뜨릴 수 없는 분야는 방송개혁이다. 61년 방송윤리위원장으로 방송과 인연을 맺은 이래 88년 노태우(盧泰愚)정부에서 방송위원장을 맡았고, 98년 김대중(金大中)정부에서는 방송개혁위원장을 맡아 이 분야 개혁을 위해 노력해왔다.

오병상 기자

▶1917년 함경남도 이원 출생

▶45년 한신대에서 신학 전공

▶49년 경동교회 목사 취임

▶53년~57년 미국 유학

▶58년 기독교학생연합회 이사장

▶61년 방송윤리위원장

▶65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연합회장

▶80년 기독교교회협의회장

▶88년 방송위원장

▶94년 세계종교인평화회의 공동의장

▶96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이사장

▶98년 방송개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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