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왕위전 '복병' 많아 대혼전 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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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2000년 왕위전 본선리그가 이변과 파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주 '왕위전의 사나이' 유창혁9단이 2패로 밀리며 도전권에서 멀어졌고 왕위전 13회 우승의 조훈현9단도 양재호9단에게 일격을 당해 3위로 주저앉았다.

8명이 벌이는 도전권 쟁탈전에서 선두는 '불사조' 서봉수9단과 '불패소년' 이세돌3단. 둘다 의외의 인물인데 나란히 3연승을 거두며 현재까지는 도전권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강자들이 우글거리는 본선무대에서 이들이 끝까지 뒷심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비록 죽을 쑤고 있지만 조훈현9단이나 유창혁9단이 막판에 다시 치고 나온다면 올해의 왕위전은 그야말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대혼돈의 무대가 될 듯하다.

이번 왕위전 리그는 출발부터 4명의 구세력과 4명의 신세력이 팽팽히 맞서는 구도가 됐다.

조훈현.서봉수.유창혁.양재호는 국내 랭킹 2~5위를 차지해온 구세력의 핵심 인물. 이에 비해 윤현석5단.안조영5단.이세돌3단.원성진2단은 신진세력의 대표주자들이다.

지난해 도전자가 되어 이창호9단과 일진일퇴 끝에 2대3으로 아깝게 패배한 유창혁9단이 본선 첫판에 15세의 소년기사 원성진2단에게 무너져 왕위전은 출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원2단은 곧 2연패하여 본선의 벽을 실감해야 했고 안조영5단도 3연패로 주저앉았다.

양재호9단은 초반 2연패로 부진하더니 지난 주 조훈현9단을 불계로 꺾은 뒤 유창혁9단마저 반집차로 격파하여 왕위전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슬럼프 기미를 보이고 있는 조훈현9단은 이 바둑까지 내리 4연패.

전승자로는 서봉수9단과 이세돌3단만 남게 됐고 이들 중에 도전자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서9단은 "아직은 초반전이다. 기다리는 강자들을 생각하면 도전권은 고사하고 시드마저 불안한 상황" 이라며 엄살이다.

왕위전은 1966년 중앙일보가 창간과 더불어 시작한 프로기전으로 삼성전자의 후원 아래 올해로 34기 째.

67년 1기 우승자는 김인9단. 이후 조훈현.서봉수.유창혁 등을 거쳐 이후 7기 연속 타이틀을 장악하다가 일본에서 돌아온 하찬석8단에게 빼았겼다.

하찬석-김인-서봉수로 왔다갔다 하던 타이틀은 조훈현에게 넘어가고 이후 조9단은 13번이나 타이틀을 독식했다.

91년 이창호는 조훈현을 간발의 스코어로 격파하고 왕위를 쟁취함으로서 국내 1인자로 떠올랐으나 유창혁9단이 이창호를 꺾고 내리 4연패함으로서 왕위전은 최강 이창호의 천하통일을 기로막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도 했다.

현재의 타이틀 보유자는 이창호9단. 돌아보면 왕위전의 역사는 곧 한국바둑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까. 올해의 도전자는 누구일까. 신세대의 이세돌 쪽일까. 아니면 구세대의 서봉수 쪽일까.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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