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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17) 을지대병원 족부정형외과 무지외반증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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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경태 교수가 김영남씨의 변형된 발을 교정한 뒤 고정용 철심을 박고 있다.
2 교정된 발뼈의 X-선 사진.
3 수술이 끝난 직후 발 모양.

하이힐을 즐겨 신었던 김영남(47·여)씨. 1년 전부터 한 시간 이상 걷거나 서 있으면 발이 아팠다. 지난 9월,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을지대의대 족부정형외과 이경태 교수를 찾아 수술이 필요한 ‘무지외반증’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나보다 더 높은 신을 더 즐겨 신어도 괜찮던데…”라며 의아해 했다. 이 교수는 “체질에 따라 변형이 잘 생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며 “하지만 앞코가 뾰족한 하이힐이 무지외반증의 원인이 되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변형된 뼈는 절골 후 제 모양으로 고정

11월 30일 오전 10시30분, 김씨는 수술 부위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부분마취 시술을 받았다. 이 교수는 “발과 발목을 지배하는 신경을 차단시켜 감각을 없앤 뒤 본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수면 마취를 추가한다”고 설명했다. 전신마취를 받지 않고도 수술이 가능한 것이다.

수술 부위를 소독약으로 닦고, 이 교수를 보조하는 전임의와 전공의가 수술하기 좋게 환자의 발을 옮겨 놓는다. 오전 11시다.

수술대 앞에 선 이 교수가 “칼”이라고 말하자 전담 간호사가 얼른 수술용 칼을 건네준다. 엄지 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5㎝쯤 절개선을 넣고 주변을 박리하니 흰 고무줄 크기의 조직이 나타난다.

“이게 압력을 받아 단단해진 인대예요. 느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교수)

“수술 이름은요?” (기자)

“내전건 유리술이라고 해요.” (이 교수)

인대와 조직을 젖히니 안쪽으로 돌출된 발가락 뼈가 보인다. 이 교수가 순식간에 휜 발가락 뼈를 절골시킨 뒤 휘어진 방향을 바로잡는다.

“뚝~!” 말 그대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후 수술용 톱으로 튀어나온 뼈가 제거되자, 이번엔 수술용 끌이 등장한다. 절골 부위를 곱게 다듬기 위해서다. 끌 사용을 끝낸 이 교수가 고개를 들자 얼핏 보기에도 변형됐던 발 뼈가 제 모양을 찾는다.

“철심 고정.”

이 교수의 지시가 떨어지자 수술을 보조하던 의사들이 뼈에 철심을 두 개 박아 뼈를 원하는 위치에 고정한다.

“철심이 몸 안에 있어도 괜찮나요?” (기자)

“아, 이거요? 6주에서 8주쯤 지나 뼈와 조직이 재생되면 그때 가서 뺄 거예요.”

말을 마친 이 교수가 또다시 “철심 고정”이라고 외치자 한 개의 철심이 더 삽입된다. 중요한 수술 과정은 끝났다. 수술장 시곗바늘은 11시15분을 가리키고 있다.

X선 사진으로 수술부위를 확인하다

기본적인 수술이 끝나자 대기해 있던 방사선 진단 장비가 수술장으로 들어온다. X선 사진으로 뼈 모양이 제대로 자리 잡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촬영한 사진을 보자 동행한 사진기자가 “뼈 모양이 달라졌다”며 탄성을 지른다.

수술이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한 이 교수는 튀어나와 제거했던 뼛조각을 다시 교정한 뼈 틈새에 집어넣는다. 기계 부품을 조작해 모양을 만들 듯, 발 뼈도 리모델링을 통해 원하는 제 모양을 찾은 셈이다. 절개한 조직을 꿰매는 작업은 전임의 몫이다.

“수술을 위해 절개한 발등의 피부 흉터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하조직만 실로 꿰매요. 피부는 자연스레 절개 부위끼리 맞닿도록 위치만 맞춰주지요.” (이 교수)

적어도 1주일은 입원해야

수술은 단시간에 끝나지만 예민한 발가락뼈 수술이다 보니 수술 후 1주일은 입원해야 한다.

“병실에서 첫 3일간은 통증 치료를 합니다. 모르핀 주사를 지속적으로 주입해 고통을 없애요. 물론 이 기간 중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 연고와 얼음 찜질을 병행합니다.”(이 교수)

12월 2일, 압박붕대를 풀고 수술 부위를 소독한 김씨는 걷는 연습을 시작했고, 수술 1주일이 되는 날 퇴원했다. 김씨는 12월 말께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을 것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무지외반증이란
뾰족구두 오래 신어 생기는 엄지발가락 변형

최근 외신은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아내인 35세 빅토리아 베컴의 발 변형이 심각해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킬 힐 매니어(kill hill mania)’인 그녀도 결국 하이힐이 가져오는 대표적인 발질환인 ‘무지외반증 환자’ 대열에 선 것이다.

의학적으로 앞코가 삼각형이고, 뒷굽이 뾰족한 하이힐을 신으면 발가락이 가운데로 모이면서 체중의 90%가 이 부위로 몰린다. 이때 엄지 발가락의 뿌리 부분은 압력을 못 이겨 밖을 향하고, 그 결과 무지외반증이 발생한다. 이 상태에선 발가락 사이에 분포해 있는 신경(지간신경)이 두꺼워져 통증이 생긴다.

여성의 10~20%가 환자다. 통상 뾰족구두를 신은 지 20년 이상 지나면 나타나 40~50대 여성환자가 가장 많다. 집앞 수퍼에 갈 때도 굽 높이가 15㎝가 넘는 하이힐을 신은 빅토리아 베컴은 30대지만 변형됐다.

직업상 하이힐을 꼭 신어야 한다면 꼭 필요한 시간에만 신고, 신발을 벗은 후엔 아킬레스건을 늘려주는 운동을 수시로 해야 한다.

무지외반증 상태에서 계속 하이힐을 신으면 작은 발가락도 망치발 변형도 나타난다. 이때 환자는 앞코는 둥글고, 쿠션이 좋은 신발을 신어 통증을 덜어줘야 한다. 또 6개월마다 두꺼워진 지간신경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해 통증을 덜어줘야 한다.

이래도 호전하지 않으면 수술로 두꺼워진 신경을 제거하고, 변형된 뼈를 바로 잡는다.

수술은 ▶2·3·4번째 작은 발가락 변형 ▶튀어나온 부위에 통증이 심할 때 ▶걷거나 신발 신기가 힘든 경우 ▶발 뒤꿈치를 들면 엄지발가락에 체중이 안 실리고 휠 때 ▶보기 흉할 정도의 변형 등이 있을 때 고려한다.

수술시간은 15~30분 정도지만 수술 후 통증 관리를 위해 최소 일주일 이상 입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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