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전략, 골프의 어드레스처럼 세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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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30면

세기의 인수합병(M&A) 거래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타임워너와 아메리카온라인(AOL) 간의 합병이 9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한때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터넷 업계의 강자로 손꼽혔던 AOL은 분사 후 재매각이라는 험로를 걷게 됐다. 2000년, 미디어 업계의 거인 타임워너는 당시 세계 최고의 인터넷 회사였던 AOL을 역대 M&A 사상 최고가인 1640억 달러를 들여 인수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미디어와 신세대 온라인 기업의 결합이라는 화려한 수사로 포장된 이 거래는 향후 전 세계 미디어시장 석권을 겨냥한 성공적인 딜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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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M&A 다음 해인 2001년 출범한 합병회사의 행로는 사람들의 기대와 전망을 벗어났다. 애초 목표와 달리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2002년에는 타임워너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인 98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기록하며 추락했다. 이후 회사는 인력감축 등 대규모의 다운사이징을 실행하면서 회생을 모색했지만 결과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었다. 주가 역시 M&A 당시보다 약 25% 떨어져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도 참담한 실패를 면치 못했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이뤄진 M&A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합병이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남다른 성장세에도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를 피할 수 없었던 신한은행은 이 거래를 통해 도약의 날개를 달 수 있었다.

2003년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인수할 당시 거래 구조는 단순했다. 국가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조흥은행의 지분을 신한은행이 인수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외형상 별다른 장애물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두 은행 간에 상이한 조직문화였다. 신한은행의 인수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조흥은행 내에서는 격렬한 반대가 터져 나왔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은행이 어찌 100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반대론의 핵심이었다.

인수 기업의 입장에서 이 같은 반발이 당혹스러웠겠지만 신한은행의 대응은 침착하고 적절했다. 인수 후 3년간 통합을 유예하고 공동경영체제를 유지하는 ‘선합병 후통합’의 방식을 택했다. 이는 금융기관의 메가딜(Mega Deal)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양측 인사들로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통합과 관련된 주요 과제를 처리했다. 직급별 감성적 통합, 지점 간 인사교류 등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융화시키는 데 힘썼다. 양 은행의 내부 조직 간 또는 조직원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면서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사전에 업무프로세스를 통일시켜 왔기 때문에 지점 통폐합 작업 역시 순조롭게 진행됐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신한은행은 M&A를 구상할 당시의 소기의 목적, 즉 자산 확충을 통한 대형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시장에서 M&A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의 성장도구로 본격 활용돼 왔다. 본연의 성과를 달성한 성공적인 거래가 있었던 반면 쓰라린 실패 사례 또한 적지 않았다. 실패의 이유로는 다양한 요인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론 치밀한 전략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M&A는 고도의 전략과 정교한 실행이 요구되는 섬세한 작업의 결정체다. 골프에서 최종적으로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좌우하는 것은 어드레스 자세에서의 방향과 각도다. 공을 치는 지점에서 발생한 1도 이내의 미세한 차이가 최종 낙하지점에서는 수십 미터의 편차로 나타난다. 어드레스 자세에서 섬세함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M&A를 골프에 대입한다면 성공적인 전략수립은 정확한 어드레스와 같다.

M&A는 밀접한 상호 연관성을 갖는 일련의 과정들로 이뤄진 유기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M&A의 전 과정(Lifecycle)은 개별적으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그럴 수도 없다. 전략 수립, 대상 확정, 조사(실사) 수행, 거래 실행, 실행 후 통합 등 전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한다.

M&A 전략은 딜의 결과 탄생하게 될 통합체의 미래상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서 비롯된다. 하나가 될 조직의 구성과 형태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외부환경과 내부역량을 결합시켜 정교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크게 봤을 때 M&A는 M&A 이후의 모습을 형성시키는 설계 단계와, 설계에 따라 구체적 모습을 만들어가는 실행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M&A의 궁극적 목적은 조직통합을 통한 가치 제고에 있다. 따라서 M&A 전략수립의 첫 단계에서 ‘M&A후 통합(PMI)’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실패한 M&A의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PMI의 실패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계약 체결에 급급한 나머지 M&A 후 통합계획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들여 치열한 인수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상이한 기업문화와 조직, 인력을 융합시켜 인수에 따른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타임워너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정교한 전략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PMI에 대한 계획이 충분치 않았던 점이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신한은행은 철저한 준비와 합리적이고 과단성 있는 통합작업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결국 실행에 앞선 계획 단계에서부터 M&A를 통해 지향하는 바람직한 통합조직 모델을 철저히 구상한 기업만이 ‘승자의 저주’가 아닌 ‘승자의 축복’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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