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전쟁] 하. '소리전쟁'의 앞날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배우 백윤식이 통기타를 치며 립싱크로 노래해 화제가 된 미스터김의 ‘담백하라’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노래는 떴지만 앨범은 1만장도 안팔렸다. [중앙포토]

영화배우 백윤식이 천연덕스럽게 립싱크로 노래하는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된 미스터김(김태욱)의 '담백하라'는 완전히 '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음반 발매 5개월이 지난 지금 성적표는 처참하다. 음반 판매량은 1만장을 못 넘겼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벌어들인 음원 수입은 1000만원도 안 된다. 미스터김 기획사 팜엔터테인먼트 강태규 이사는 "지난 10년간 음악 시장을 지켜본 결과 이번엔 성공할거라 예견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좋은 음악을 만들면 음반이 안 되더라도 음원으로 수입을 벌충할 수 있으리라던 기대도 무너졌다"고 털어놨다.

강 이사는 "음반을 하나 내면 제작부터 마케팅까지 3억~4억원이 든다. 그러나 요즘 웬만큼 검증된 뮤지션이 아니면 어디서 1억원을 지원받기도 힘들다. 음악을 만드는 데 재투자하기는커녕 빚더미에 앉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물론 음반 시장의 불황은 상당 부분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중음악비평 웹진 '가슴'의 박준흠 편집장은 "1990년대 이후 10대에게 음반을 파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30대 이상의 소비자를 잃게 됐다. 그러다 10대들이 게임 등 다른 놀잇거리를 찾아나서는 바람에 소비자를 잃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음악전문지 핫뮤직 조성진 편집장도 "LP가 사라진 것처럼 CD도 사라질 판인데 음반제작자들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음반 판매량에만 집착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음반시장이 가장 호황이었을 때도 연매출 규모는 4000억원 수준이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거둬들일 예상 수익이 2000억원, 빙그레 바나나우유 한 제품의 연매출이 약 1000억원이다. 클릭 한번이면 음악을 복제할 수 있어 저작물 훔치기도 LP나 CD시절보다 훨씬 쉬워진 상황에서 당장 돈줄마저 끊긴 '영세한' 음반제작사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긴 힘든 상황이다.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만 몰두할 수 있는 토양을 먼저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박준흠 편집장은 "영미권에선 문화산업을 키운다는 관점에서 음반 제작을 지원해 은행 대출이 비교적 쉽다. 우리 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중음악은 '딴따라'로 폄하되는 바람에 정책적으로도 지원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에 대한 의식 수준도 낮다. 네티즌들은 대개 "들을 만한 음악이 없어서 음반을 안 산다"고 주장한다. KAIST테크노대학원 문송천 교수가 최근 한달간 인터넷 설문 사이트 월드서베이(wsurvey.net)에서 25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소리바다 등에서 파일을 내려받은 경험이 있었다. 파일 교환이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네티즌은 33%뿐이었다.

반면 지난해 말 국제음반산업연맹(IFPI)이 영국.독일.프랑스.덴마크 4개국 네티즌에게 물어본 결과 응답자 66%가 '파일 교환은 불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 인터넷 보급률(70%)은 세계 1위다. 한국 정부와 국회가 '디지털 강국'을 외치며 외형을 키우는데만 열중하는 동안 미국은 이미 6년 전 세계 최초로 파일 교환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지난 5월에는 이탈리아가 같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 나라는 도로만 넓혀놓고 신호도, 교통표지판도 세워놓지 않아 폭주족만 질주하는 모양새다.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