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적자금 국회동의 거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공적(公的)자금에 대한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의 15일 기자회견 내용은 충격적이다. 우선 지금까지 금융 구조조정에 들어간 돈이 무려 1백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수해 재사용한 12조원을 빼도 90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숫자의 돈이 금융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는 정부가 밝혔던 64조원보다 훨씬 많은 규모로,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이 李장관의 입을 통해 공식 확인된 것이다. 이러고도 수십조원이 더 필요하다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 지경이 됐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는 또 그 동안 약 26조원을 국민 모르게 편법 동원한 점에 대해서도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더욱 이해 못할 것은 2차 금융개혁이 시급하고, 여기에는 30조원 이상이 더 필요하다면서도 국회 동의는 안받고 '알아서' 꾸려 나가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李장관은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가능하면 나간 돈을 회수해 사용하겠다고 강조한다. 또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최대한의 자구(自救)노력을 요구하겠다는 의도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문제는 예금보험공사를 통하는 등의 방법으로는 자금 마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이런 식으로 질질 끌다간 실기(失機)할 위험이 크다.

지금까지도 미루다가 부실이 더 불어나지 않았는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李장관이 왜 스스로 협조하겠다는 국회 동의를 마다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국회에서 제기될 책임 추궁이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인가.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경고음이 높아지고, '제2 위기설' 이 고조돼 정부가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열어야 할 판이다. 이런 불안감의 중심에는 미흡한 구조조정이 있고,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은 금융 구조조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정부가 속히 충분한 공적자금을 조성,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불안요인이 조금이나마 제거되고, 결과적으로 국민 부담도 덜 수 있다.

단, 자금은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치는 정공법으로 조성돼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 투입된 돈의 효율성에 대한 점검결과와 추가손실 내역, 그리고 현황과 문제점을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

그래야 자금의 추가조성에 대한 국민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 여야도 이 문제를 당리당략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정책 당국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현 경제장관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왔다. 그 결과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이는 경제운용에 부담이 되고 있다. 국민 세금을 마치 제 호주머니 돈처럼 쓴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