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재첩의 고장 경남 하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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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5월 이면 노란 방수복과 커다란 자줏빛 고무 대야가 녹색의 섬진강을 점점이 수놓는다.

주민들은 그런 채비를 하고 가슴까지 섬진강에 잠근 채 긴 자루끝에 달린 철망으로 연신 모래바닥을 훑으며 재첩을 캔다.

강을 떠나 지리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은은히 풍겨 오는 녹차의 향기. 파릇파릇한 차 잎을 따서 덖고(살짝 볶는 것), 비비고, 말리기를 반복하다보면 5월이 지난다.

섬진강과 지리산을 낀 경남 하동군. 재첩잡이가 한창인 요즘은 짚신을 만드는 전통마을 하동읍 신기리 사람들까지 삼던 짚신 내던지고 보다 쏠쏠한 수입을 올려주는 재첩을 잡는다.

하동 주민들은 재첩을 잡아 서울은 물론 과거 재첩으로 유명했던 부산에까지 내다 팔고, 식당을 내어 재첩국(5천원 내외).재첩회(2만원선) 등 요리로 높은 소득을 올린다.

그러나 과거의 재첩은 그저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식량수단이었다.

조명옥(70.고전면 전도리)씨는 "익지 않은 풋보리를 볶아 갈아서는 재첩을 넣고 죽을 쑤어 먹었다" 고 옛날을 회상한다.

재첩으로 유명한 곳은 하동읍 남쪽, 섬진강 하류의 신방마을(고전면 전도리). 주민들이 재첩 캐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직접 잡아볼 수 있는 곳은 하동읍 송림공원 부근으로 구례로 가는 19번 국도와 광양 방향 2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하동의 차(茶) 역사는 1천2백년이나 됐다. 최치원이 비문을 쓴 쌍계사(화개면)의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47호)에는 서기 830년 당나라에서 들여온 차 씨를 진감선사가 쌍계사 근처에 뿌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50년대말만 해도 화개 주민들에게 차란 것은 그저 봄에 잎을 따서 말려뒀다 겨울에 감기가 들면 우려내 마시는, 민간처방약이었다.

그러다 62년 고(故) 조태연씨가 마실 것으로 발전시켜 지금은 전남 보성군과 더불어 국내 양대 차 생산지가 됐다.

화개장터에서 시작해 쌍계사를 지나가는 1023번 지방도 양옆에 수십 곳의 녹차집들이 있다.

비교적 한산해 차를 마시며 주인을 청하면 마주 앉아 차에 대한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찻집들 중에서 이름난 죽로찻집.산록다원.무향다원 세곳은 모두 조태연씨와 관계가 있다.

죽로찻집(0595-883-1743)은 조씨의 장손으로 3대째 이어내려오는 집. 조씨의 사위가 운영하는 산록다원(884-0036)은 지난해 하동 차 품평회에서 최고의 명차를 만드는 곳으로 뽑혔다.

무향다원(883-2904)의 주인은 조태연씨의 5남으로 한해에 1백g짜리 딱 2백포만 만들며 일부 애호가들이 높은 값에 산다.

지난해 품평회에는 나서지 않았다. 쌍계사 입구 다리에서 지리산 쪽으로 2㎞쯤 더 가 왼편에 있다. 같은 이름의 찻집이 쌍계사 입구에도 있어 혼동하기 쉽다.

쌍계사 일원에서는 19~23일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린다. 차 만드는 과정을 견학하고, 직접 차잎를 따 볼 수도 있다.

문의 하동군청 880-2351, 2.

소설 '토지' 의 무대인 화개면 평사리 악양뜰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다.

한때 번영했던 화개장(1.6일)은 유명무실해져 오전에 잠깐 장이 열렸다 이내 닫힌다. 군에서는 화개장 부흥을 위해 옛 장터 복원공사를 하고 있으며 7월 중 완공 예정이다.

▶맛집〓하동읍 북쪽 19변 국도변의 '귀감' (883-2001)에선 물대신 차가운 녹차를 내온다.

7가지 찬이 딸려 나오는 산채비빔밥이 5천원. 하동은 참게탕(3만~5만원)으로도 유명하다.

19번 국도에서 쌍계사로 가는 입구의 강남식당(883-2147)은 자연산 참게만을 고집한다.

글.사진〓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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