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교포들이 보는 남북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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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인 옌지(延吉)주민들은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 소식을 크게 반겼다.

남북한 경제협력이 더욱 활발해지면 침체한 옌지 지역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옌지는 '서울이 기침하면 독감' 에 걸린다고 할 정도로 한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97년 말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겪자 옌지 경제도 함께 어려워졌다.

3만명의 조선족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벌어 송금하는 돈이 연간 1억달러가 넘는데, 이 돈은 지난해 옌볜 자치주 외화 수입의 30%나 된다.

옌볜 자치주는 부근 선양(瀋陽).창춘(長春) 등의 견제 때문에 늦춰진 서울과의 직항로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경협이 확대되면 빨리 개설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옌지간 직항로가 열리면 백두산 관광 일정이 단축되고, 북한의 경제개방특구인 나진.선봉지역과의 접근도 쉬워져 옌지가 남북경협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옌지~투먼(圖們.중국-북한 국경도시)~훈춘(琿春)을 연결하는 75㎞의 고속도로 건설공사도 한창이다.

백철수 옌지 시장은 "옌지는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을 거울로 받아 이를 북한에 쬐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곳" 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공업단지와 같은 옌지 경제개발구관리위원회 주철봉 주임(부시장급)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옌지를 북한 진출의 교두보로 삼아 공장을 많이 짓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94년부터 수십만명의 조선족이 남한을 다녀가 6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을 왕래하는 3천여명의 조선족 보따리무역상(袋工.따이꽁)들은 옌지 지역경제의 젖줄이며, 현재 3백여 한국 중소기업이 옌지에 진출해 조선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옌지시 한복판 해방로에서 문을 연 한국상품 도매센터에 개장 첫날부터 수천명의 조선족이 찾아왔다.

옌볜방송국 이순욱 경제부장은 "한국산 제품이 인기가 높다 보니 유사제품도 나돌고 있다" 고 말했다.

조선족들은 6.12 남북 정상회담이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고대하고 있다.

주광희 옌지대우호텔 영업경리(부장)는 "남북경협이 활성화하면 조선족의 방북도 늘어날 것" 이라며 "97년부터 북한 당국이 조선족의 방북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있는데 정상회담을 계기로 달라지길 기대한다" 고 말했다.

그 전에는 북한에 있는 친척이 보내온 편지 한장만 들고 가도 방북 비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해말 중국 의료봉사단원으로 평양에 다녀온 창춘 시립개선병원 내과의사 황사섭씨는 "북한의 식량난을 남한이 덜어주는 것은 한민족으로서 환영할 만한 일" 이라며 "정상이 만나 진실하게 접근하면 의외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옌볜 자치주의 한 조선족은 "조선족은 대부분 북한에 연고를 두고 있어 북한을 어머니의 나라로 부르고 남한을 아버지의 나라로 일컫는다" 며 "부모들이 이혼해 고아 신세가 됐지만 부모끼리 상봉하면 고아 신세도 면하는 것 아니냐" 며 남북한간 해빙 무드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옌지(중국)〓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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