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김과 전자전 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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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 사업은 이양호씨가 국방부장관으로 있던 1996년 본격 추진됐다.

국방부는 그 해 5월부터 입찰에 참여했던 독일.프랑스.이스라엘에 차례로 평가단을 파견해 두달 동안 장비 성능시험을 했다.

평가단은 이를 통해 '3개국 장비 모두 실전에 사용하기엔 성능이 뒤떨어져 보강이 필요하다' 는 결론을 내렸다.

李씨에 따르면 평가팀이 귀국한 직후인 7월 청와대 사정비서관실에 자신과 평가단을 비방하는 투서가 접수됐다.

'평가단 중 일부 요원들이 이스라엘에서 린다 김으로부터 향응과 돈.보석 등을 받았으며, 린다 김과 절친한 李장관이 이스라엘 장비를 밀고 있다' 는 내용이었다.

이 투서는 바로 기무사에 이첩돼 내사가 시작됐고 당시 L기무사령관이 李전장관을 찾아와 "투서 내용 중 장관 관련 부분이 있다" 고 조사 성격의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李전장관은 " '정종택(鄭宗澤)환경부장관이 조카로 소개해줘 같이 식사한 적이 있다' 며 린다 김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고 설명했다.

이후 린다 김의 실체에 대한 기무사의 조사가 한달 가까이 이뤄졌다. 린다 김과 鄭전장관의 인척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기무사 요원들이 충북 청주까지 내려가 관련 기록을 모두 뒤졌다고 한다.

투서 사건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조사 결과 식사 대접과 관광 안내 등의 접대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평가팀의 일부 인사에게 줬던 돈(약 2천달러)은 모두 반납됐음이 확인됐다. 또 평가요원 1명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줬다는 투서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李전장관은 당시 "기무사 조사로 인해 시험평가팀장인 K대령이 옷을 벗었고, 중령 2명 등이 강등됐다" 고 말했다.

96년 10월 李전장관이 수뢰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업의 진행 상황이 달라졌다. 다음해 2월 이뤄진 사업자 재선정 작업에선 린다 김이 대리했던 이스라엘측 업체가 제외된 채 독일과 프랑스 장비업체로 대상이 압축됐다.

투서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그해 5~6월 이뤄진 시험평가는 96년과 달리 현지가 아니라 두 업체가 제출한 자료만으로 국내에서 이뤄졌다.

결국 같은 해 11월 프랑스의 톰슨사로 결정됐다. 하지만 잡음은 계속됐다. 다음달 독일 업체측이 우리 법원에 "사업자 선정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며 국방부를 상대로 사업자 결정 취소청구소송과 가처분신청 등 행정.민사소송을 잇따라 냈다.

국방부가 모두 승소했지만 외국의 제작사로부터 법정 소송까지 당하는 창피를 당해야 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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