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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에 교육기회 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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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할린에는 아직도 4만여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이들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시대에 강제로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뒤 귀국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동포 1세와 그들의 후손이다. 이들이 겪은 운명적 강제 이주의 역사는 당사자는 물론 우리 민족 모두에게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줬고, 아직도 그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받은 고통과 한에 비하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관심은 너무도 미약하다. 1994년 이후 그나마 고령자를 중심으로 일부 영주 귀국이 이뤄지고, 경기도 안산 등지에 거처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영주 귀국을 원하는 많은 한인 1세를 받아들이기에는 아파트 시설 등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는 이분들의 필요와 요구를 국가 차원에서 귀를 기울이고, 신속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과거 문제 해결만으로는 사할린 동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피해 당사자에 대한 보상이 아무리 많이 이뤄지고, 또 그토록 원하는 영주 귀국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미래와 연결되지 않는 치유 노력은 과거의 아픔을 오히려 대물림하게 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아픈 과거를 진정으로 청산할 수 있는 길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후손들에게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의 후손이 더 이상 과거의 멍에에 속박된 사할린의 주변인이 아니라 이제는 당당한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다행히 사할린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돼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가 대거 진출하고 있고, 일본 상사들도 앞다퉈 나가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 건설이 시작될 때 우리의 사할린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시켜야 한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한민족을 양성하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민족 사랑이고 그들의 아픈 과거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대학은 지난 7월 말 사할린 현지에서 일본의 민간 단체, 사할린 국립대학과 공동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사할린의 젊은 동포들에게 양질의 선진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우리의 젊은 동포들이 마음껏 배울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출연해 가칭 '사할린 한인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재단'설립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이제 사할린의 한인문제는 과거 보상형에서 미래 설계형으로의 방향 전환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제껏 모든 억울함과 슬픔을 이겨낸 위대한 사할린 한인 1세에게 우리는 이제 이들의 후손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

장제국 동서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