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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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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학술회의에서 나는 일본 측의 안중근 연구, 특히 그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나는 다른 분의 발표에서 신채호와 이회영도 나름대로의 ‘평화론’을 주장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평화론자였고 그들에게 있어 독립운동이란 ‘독립평화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돼 큰 수확이었다. 한국 독립투사들의 운동을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의 발로로만 바라보았으나 그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제국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보편화해 나가는 노력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심포지엄 후 우리는 옛 뤼순감옥을 견학했다. 거기서 위 3인의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독방, 간수들의 방, 수인 교육장, 사형 집행장 등을 둘러봤다. 교수형을 집행하던 장소는 당시의 잔인한 모습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집행장 옆에는 사형수들이 대기하는 방이 있었는데 형 집행을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의 비통한 마음이 느껴졌다. 교수형을 집행한 시체는 바닥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곧바로 아주 작은 통에 쑤셔 박혔고 그대로 감옥 뒤의 공동묘지에 명찰도 없이 매장되었다. 우리의 세 분 독립운동가가 매장되었다고 추정되는 공동묘지 자리를 둘러봤으나 매장 위치가 어디라고 확정할 수가 없는 듯했다. 더구나 그 자리에 몇 년 후에는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안타까웠다. 이번 여행에는 이회영 투사의 아들 이규동 옹과 손자 이종찬 전 국회의원이 동행했는데 아버지(할아버지)가 순국한 뤼순감옥과 황폐해진 공동묘지를 헤치고 다니는 그들의 심정이 어떨지 헤아려졌다.

나는 매점에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직전에 그를 존경했던 일본인 간수 지바에게 써준 서예 글 사본을 구입하여 귀국 후 그것을 내 연구실에 걸었다. 지바 가문에서는 오랫동안 가보로 내려온 글이라고 한다. 지바가 안중근을 존경했던 당시의 가혹하고도 평화로웠던 그들의 추억이 내게도 되살아나는 듯했다.

단둥(丹東)으로 이동해 북한이 잘 보이는 압록강 입구에서 배를 타고 북한 땅 가까이까지 갔다. 건너편 북한 강가에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전 미국의 여성 기자 두 명이 상륙했다가 잡힌 장소이기도 하다. 그 후 우리는 단둥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여종업원들이 모두 북한 아가씨였다. 대부분 북한의 고위층 자녀들이라고 한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제안했으나 ‘사진은 안 되시라요’라고 거절당했다.

그다음에 우리는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고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장소를 둘러본 다음 선양(瀋陽)에서 귀국했다. 나는 박사 논문으로 ‘일제의 동화정책’에 대해 썼는데 이번 여행은 그 논문을 보완할 수 있는 독립운동사와 접하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이런 기회를 주신 분들께 다시금 감사 드린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