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백두대간] 上.생태계파괴 극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사상 최악의 산불로 검게 그을린 동해.삼척.강릉.고성 일대 백두대간엔 죽음의 그림자만 가득하다.

타다만 나무와 들짐승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을 뿐 봄철 새싹도 없고 산새.풀벌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잿더미 위에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시리즈를 통해 파괴된 생태계 현장을 진단하고 복구를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백두대간이 신음하고 있다. 강원도 영동지역 산불로 1만4천여㏊가 잿더미로 변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다.

지난 7일부터 8일 동안의 산불로 백두대간의 연결고리인 동해시 두타산 일부를 비롯, 삼척.강릉.고성군의 울창한 산림이 불타 없어졌다.

18일 피해 조사차 삼척시 미로면 고천리 일대 산불현장을 찾은 산림청 김용하(金龍河)산림자원과장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피해가 큰 데 놀랐다. 金과장은 "피해가 너무 커 복원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이라고 말했다.

金과장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가장 큰 피해는 산림. 1996년 고성 산불 이후 산불지역에 대한 연구를 해온 강원대 정연숙(鄭蓮淑.생명공학부)교수는 "기본적으로 불타기 이전 숲의 연령만큼 상태계가 파괴돼 천이(遷移)의 초기단계로 퇴행했다" 고 말했다.

숲이 생기기 이전 초기상태의 구조와 기능으로 바뀌는 등 생태계 시스템 자체가 변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고성군 송지호 뒷산의 산불 피해현장을 찾았던 강원대 정영상(鄭英祥.자원생물환경)교수는 "토양 생태계가 크게 파괴됐다" 고 말했다.

새 생명을 막 피우려는 토양 속의 식물은 물론 송이 균사 등 사상균과 이동성이 적은 개미.벌레 등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등 종(種)의 다양성을 상실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鄭교수는 "이들 잿더미 토양이 빗물 등에 휩쓸릴 경우 하천과 바다가 오염되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립수산진흥원 동해수산연구소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구소 김안영(金安永)소장은 "장마로 재가 함유된 부유물질이 바다로 유입되면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 작용을 방해, 조개류의 먹이를 없애는 등 생태계 교란 현상이 바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숲이 파괴되면서 동물 생태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18일 강릉과 삼척 피해 현장을 찾은 강원도 산림개발연구원 박광돈(朴光燉)연구사는 "새를 포함한 야생조수들은 위험을 느끼는 감각이 뛰어난데다 이동성도 좋아 일단 이번 산불로 타죽는 피해는 별로 입지 않은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러나 산불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함으로써 기존 서식 동물과 영역 다툼이 예상되는 등 동물 생태계 교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기초 식물이 사라지는 등 먹이사슬이 파괴된 지역이 많아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생활하는 동물들의 이동 통로도 단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든 이번 강원 영동지역 산불은 산림뿐 아니라 생태계에도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1차 피해조사를 벌이고 있는 산림청은 종합적인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는 추후 조사할 계획을 세웠다.

1주일째 산불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녹색연합 조태경(趙台經)생태계 간사는 "엄청난 재앙" 이라며 "피해가 이렇게 크기 때문에 섣부른 조사와 대책 마련보다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강릉.동해.삼척.고성〓이찬호.홍창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