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툭하면 사표 내는 무책임한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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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당의 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이 국회의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어제 아침 강제로 끌려나갔지만 다시 의장실 앞으로 달려왔다. 이미 통과된 미디어법을 원점으로 돌려 다시 논의하라는 것이다. 전기톱·해머 국회에 대해 처벌하고 사과한 지 며칠 됐다고 또다시 국회법 절차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겠다고 떼를 쓰는 것인지 답답하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기관이다. 국회의원들이 법률을 무시하고 초법적인 물리력을 동원하면서 힘없는 서민들에게만 준법을 강요할 것인지 궁금하다. 더군다나 천정배 의원은 위법행위를 처벌하는 정부기구의 최고 수장, 법무부 장관 출신이 아닌가.

어제는 헌법에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이었다. 헌법 제54조②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법정 시한을 넘기는 일이야 자주 벌어지는 일이 돼버렸지만 심의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19년 만에 처음이다. 민주당은 천 의원 등을 강제로 끌어냈다고 항의하며 본회의 참석까지 거부했다.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81개 법안도 자동 보류됐다. 노조의 파업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비난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큰 고질병은 오히려 바로 이 국회의 파업이다.

농성 의원들은 또 이미 의원직 사직서를 내놓은 사람들이다. 현재 사직서를 내놓고 있는 의원은 이들 외에도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와 박연차 사건과 관련한 혐의에 결백을 주장하는 이광재 의원 등 5명이다. 사직서를 냈으면 최소한 수리될 때까지는 국회를 떠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사직서까지 내놓고 국회에 들어와 농성을 벌이는 것은 명분 없는 행동이다. 더구나 어제 오전에는 헝가리 대통령의 국회의장 접견이 있었다. 적어도 외교·안보 문제만은 초당적(超黨的) 협조를 하는 것이 정치인의 기본적인 금도(襟度)가 아닌가.

국회의원은 국민의 표로 당선된 사람들이다. 임의로 사표를 던지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 위반이다. 사직서를 내놓고 또다시 국회의장실에 들어와 농성을 벌이는 것을 보면 이들이 정말 자리를 버릴 생각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문제로 곧 사직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는 이완구 충남지사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표로 선출한 자리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할 만큼 그렇게 가볍게 다뤄선 안 된다.

우리는 이들의 사직서를 처리하기보다는 의원들 스스로 즉각 복귀하는 게 마땅하다고 종용한 바 있다. 내년도 나라 살림을 정하는 예산안 심사는 방치한 채 야당 대표가 장외로 돌고, 일부 의원은 의장실을 점거해 국회와 외교 활동까지 막는데도 이들의 사직서를 방치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사직을 회기 중에는 본회의 의결, 폐회 중에는 국회의장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절차에 불과하다. 의장에게 사직서를 묵살할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국회가 열려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국회 파업을 언제까지고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