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 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는데 선거판이 너무 과열돼 후유증이 걱정된다.여야 각당과 후보들은 모두 상대가 금권.관권선거를 획책한다고 삿대질해대고 있다. 특히 막판에 금품살포.향응제공 등 폭로와 고발이 난무하고 있어 내 한표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게 됐다.
선관위가 10일까지 적발한 불법.탈법행위가 2천3백여건으로 15대 때의 3배를 넘는다고 하니 유례없는 혼탁선거가 돼가고 있는 것 같다.
중심을 잡아야 할 중앙당이 되레 앞장서 경합지구에 실탄을 집중지원하니 어쩌니 하며 독려해대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선거판에 나선 일선 후보들이 무슨 짓인들 마다할 것인가.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의 의식구조가 무릅쓸 행태는 너무나 뻔하다.
사실 이번 선거운동은 여러 면에서 너무 걱정스럽다. 특별한 공약대결도 없고, 쟁점도 없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부패하고 반민주적인 후보들을 개별 낙선 표적으로 거론했고, 개정선거법에 따라 후보의 병역.납세.전과기록 등의 공개로 선거의 이슈가 개인 후보에 대한 검증문제로 좁혀지다 보니 개인 신상에 대한 비난이나 폭로 같은 흑색선전이 더 치열해진 점도 없지 않다.
때문에 여야 4당은 겉으로는 지역감정을 건드리지 말자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정서를 더욱 부추기고, 상대당을 공존할 수 없는 적대적 집단으로 몰아가는 극단적인 선거운동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선두다툼을 벌이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자기네들이 다수당이 안되면 나라에 큰일이라도 생기는 양 유권자들을 향해 사뭇 협박조의 성명을 발표해왔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이기면 장기집권 음모를 꾸밀 것이라고 주장하며 관권선거가 판을 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면 주가가 폭락하고 정국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등 위기를 부채질했다.
거기에 정부마저 거들어 온갖 선심공세를 펴는가 하면 급기야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하는 등 선거판을 더욱 가파르게 몰고가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북새통 선거운동 속에 선관위는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선거운동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 같아 적잖이 우려된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냉철한 시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의 선거운동 과정을 보면 유권자들이 오히려 선거를 먹자판이나 놀자판으로 몰고간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낡고 썩은 정치를 탓하면서 자장면 한 그릇, 돈 몇푼에 내 한표를 파는 것은 정치판의 혼탁을 방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탈법.불법 선거운동을 감시.고발하는 적극적인 시민정신의 발휘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내 한표만이라도 단단히 지키겠다는 자각이 더욱 중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