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파동 커진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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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현대그룹 인사 파동을 둘러싸고 정몽구.몽헌 형제 회장 측간의 엇갈린 발표가 계속되면서 지난 24일 동생인 정몽헌 회장이 너무 강하게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몽헌 회장측은 이날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의 발표를 통해 "구조조정본부는 현대증권과 관련한 인사를 발표한 적이 없다" 며 "앞으로 정몽구 그룹 회장은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직을 면하고 현대자동차 일에만 전념하게 된다" 고 발표했다. 친형인 정몽구 회장과의 논의는 전혀 없었다.

정몽헌 회장이 귀국해 이익치 회장과 함께 가회동 정주영 명예회장의 집을 찾아간 시각은 오후 4시 20분. 鄭명예회장과 20분 정도 대화를 나눈 몽헌 회장은 회사로 돌아와 30여분 뒤인 5시 10분 전격적으로 인사 발표를 단행했다.

정몽구 회장 진영에서 야기한 인사 파문을 '불법' 으로 못박고 그 죄(?)를 물어 정몽구 회장의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직까지 박탈한 것. 이에 따라 그룹 회장직이 걸린 인사를 불과 몇십분만에 결정했으며, 그 발표 내용도 자극적이었던 점이 등을 문제점으로 들수있다.

정몽헌 회장의 밀어붙이기는 다음날인 25일에도 계속됐다.

분한 마음을 술로 달랜 정몽구 회장이 아버지의 분명한 의중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오전 10시30분쯤 가회동 집을 찾아가자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곧바로 쫓아왔다.

현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말 한마디 없이 식탁만 내려다보고 식사하다 40여분만에 먼저 일어섰다.

정몽구 회장은 건물 밖에서 구두를 고쳐 신은 뒤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집 안쪽을 쳐다보며 혼자 서성이다가 집을 나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몽헌 회장은 식사를 마친 뒤 김윤규 사장 등과 함께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담소를 나눴다.

정몽헌 회장은 2층 서재에서 밝은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지시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초 鄭명예회장의 뜻이 그랬다 하더라도 정몽헌 회장이 형인 몽구 회장의 체면을 생각해 퇴로를 열어주면서 공격해야 했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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