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한 우물’ 돈 목 말라 LED칩에 한눈 팔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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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국내 원자력 발전사에서 우리기술이란 회사를 빼기 힘들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안다. 핵심 장비인 운용제어시스템을 처음 국산화해 미국 등 선진국들도 기술력을 인정했다. 1993년 서울대 제어계측 전공 5명이 설립한 이 회사는 98년 부산 고리 1호기에 장비 공급을 시작으로 2016년 두산중공업이 완공할 경북 신울진 1·2호기에도 국산 원전 설비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미국·싱가포르 등 해외에 노후 원전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17년간 원전 한 우물만 파서 2000년엔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런 우리기술이 ‘한 우물 파기’ 전략을 포기했다. 원전 운용장비 사업의 ‘명인’ 칭호는 얻었지만 큰 돈벌이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떠오른 ‘발광다이오드(LED)’용 칩 개발 쪽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제2 도약을 꿈꾼다. 첨단 LED 칩 기술을 가진 미국 버티클의 한국법인에 100% 출자하고, 이달 중순 경기도 송탄에 공장을 세웠다.

그 선봉에 노선봉(44·사진) 사장이 있다. 25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만난 그는 “리스크(위험성)가 크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에 도전해 함께 고생한 80여 직원과 가족들에게 대박을 안겨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원전 운용설비는 건설사에 의존하는 시장 구조라 ‘먹고사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는 것이다. 변대규 휴맥스 사장 등 서울대 공과대 선후배들의 성공신화가 거론될 때마다 솔직히 부러웠다. 그는 “원전 국산화라는 큰일을 이뤘기에 이제 대박 신화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 사장은 17년의 원전사업에 대해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원전 시스템은 기술을 개발해도 상용화까지 5년 이상 걸리기 일쑤다. 이에 비해 원전 장비의 교체 주기가 길어 시장과 매출 성장세는 완만하다. 그는 “매출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LED로 ‘한눈을 팔자’ 80여 명의 직원들 사기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사이클이 긴 원전사업을 보완하려고 캐시카우 사업으로 LED를 선택한 것이다. LED 사업은 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미국 버티클에 18억여원을 들여 전체 지분의 30%를 인수하는 등 가속도가 붙었다.

노 사장은 LED 기술력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19일 준공한 송탄 공장은 첨단기술 제품인 ‘수직형’ LED 칩을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수직형 칩은 기존 ‘수평형’ 칩보다 효율이 높지만 공정이 복잡해 수율이 낮다. 미국 버티클은 수직형 칩의 수율을 높이고 LED 조명기구의 효율까지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양산 기술도 이미 중국·대만 등지에서 검증됐다고 했다. 그는 “국내외 LED 회사들이 앞다퉈 테스트를 요청하고,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삼성종합기술원에서 LED 팀장을 맡은 국내 LED 1세대 전문가인 유명철 버티클 한국법인 사장과 손잡았다. 그는 “다음 달부터 월 3000장가량의 LED 칩을 생산해 내년 1월부터 판다”며 “내년 3월 제2공장이 준공되고 그 이후엔 월 생산량을 5만 장(연 매출 5000억원 이상 규모)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노 사장은 내년을 ‘제2 창업의 원년’으로 기대한다. 기존 원전 사업도 신울진 1·2호기 건설이 본격화하면 성장 곡선을 그리고, 새 비즈니스인 LED 칩 사업까지 뜰 것으로 봐서다. 그는 “내년 매출 목표를 올해 180억원에서 확 늘어난 300억원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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