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개헤엄’과의 결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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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저께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공식 가입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었다고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전쟁을 겪은 절대빈곤의 후진국이 국제 원조로 연명하다 원조공여국으로 발돋움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가슴이 벅찰 수밖에 없다.

C군의 나라 잠비아는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해 1인당 소득이 540달러였다. 64년이라면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11월 30일)를 달성하고, 1인당 소득도 103달러로 단군 이래 최초로 100달러를 넘겼다며 감격하던 해다. 소득 100달러의 나라 형편은 보나마나였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기억하면 된다. 주인공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서적외판원은 죽은 아내를 대학병원에 연구용으로 팔아 치운 처지였다. 그 돈으로 둘이 함께 진탕 술을 먹었고, 그 밤이 가기 전에 외판원은 자살하고 만다. 이보다 앞선 50년대는 ‘쇼리 킴’(송병수 작)의 시대였다. 전쟁고아 쇼리(shorty·꼬마) 킴과 딱부리, 양공주 따링 누나가 미군부대 주변에서 잡초처럼 엉켜 살던 시대였다. 서울의 적십자병원 앞에는 매혈(헌혈이 아니었다!)하려는 빈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피를 판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는 악순환의 대열이었다. 거기에다 매혈한 돈을 갈취하는 깡패들까지 들끓었다. 제대로 된 나라 꼴이 아니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60대 선배 한 분이 지나가듯 말했다. “우리 나이대는 굶고 자라서 그런지 식탐(食貪)이 많다. 다들 살 만해진 지 오래인데도 아직도 먹을거리를 보면 눈들이 반짝거린다. 그럴 땐 슬퍼진다.”

60, 70대만큼은 아니지만 40대 후반~50대만 돼도 미국이 잉여농산물로 제공한 ‘악수표 밀가루’의 추억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딱딱한 미제 고형 우유를 입안에서 오래오래 음미하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존슨탕’에서 발전한 부대찌개가 우리 식당 메뉴판에서 지겹도록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유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잠비아의 1인당 소득은 950달러다.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 나는 C군이 ‘쇼리 킴’ 시대를 거쳐 ‘잠비아 1964년 겨울’을 어떻게 살아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우리나라가 원조공여국으로 올라 선 비결의 상당 부분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 ‘개헤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의미의 개헤엄을 친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6·25전쟁 중 한겨울에 미8군 사령부가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잔디 입히는 공사를 요구하자 낙동강 주변 보리밭을 통째로 사들여 묘지에 입혔다. 잔디든 보리든 파랗게만 보이면 된다는 식이었다. 밥을 하자니 쌀이 없고 불을 때자니 장작이 없는 마당에 ‘맨땅에 헤딩’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라를 일으켰다. 그러나 원조공여국이라는 묵직한 ‘청구서’를 받은 뒤에도 계속 개헤엄이 통할 수 있을까. 턱도 없는 일이다.

주먹구구, 얼렁뚱땅, 떼법, 아니면 말고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개헤엄의 유산을 이제는 정말 청산해야 한다. 약속과 규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곳곳에서 제대로 된 영법(泳法)보다 개헤엄이 선호되고 있다. 60여 년 만에 주는 자로 탈바꿈한 우리다. 이제부턴 모든 분야에서 국격(國格)을 업그레이드할 때라고 나는 믿는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