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사이버 리포터] 주민등록 이전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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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흐름이 주민등록 이전운동으로 확산됐다. 특정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해 주민등록까지 옮겨 표를 몰아주는 일은 역대 선거에서 유례가 없던 일이다.

그동안 선거철이면 후보측이 지지표를 늘리기 위해 은밀히 다른 지역 사람들을 지역구내로 끌어들이는 위장전입이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주민등록 이전은 처음이다.

이 기사는 중앙일보가 4.13총선을 유권자 중심으로 보도하기 위해 운영하는 '사이버 리포터' 와 공동취재한 첫 보도다.

◇ 상황〓주민등록 이전운동의 첫 발화점은 강원도 원주와 대전 유성이다. 두곳 모두 교육환경 개선을 내걸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원주에선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상지대.영서전문대 등이 전면에 나섰고, 지역내 시민단체인 원주 가톨릭대학생연합도 합세했다. 원주의 경우 강원도가 신흥교육도시로 부상 중이지만 기숙사 등 교육환경이 미비해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어왔다.

원주는 서울 등 외지 출신 학생이 전체 학생의 70%(약 8동)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민등록 이전운동을 부추긴 요인이 됐다.

원주 상지대 학생회 김학재 정책국장은 "학생회간부 10여명이 14일 주민등록을 이미 옮겼고 15일부터는 관광버스를 동원, 주민등록 이전을 원하는 학생들을 해당 동사무소까지 실어나르기로 했다. " 고 말했다.

유성은 충남대가 주도하고 있다. 유성이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후 서울 강남 유흥가에서나 볼 수 있는 룸살롱 등 술집들이 들어서는 등 교육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진 반면 학생들의 교육 편의시설은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 대학생들의 주장이다.

이종섭 충남대 총선운동본부장은 "학생회관 앞 게시판에 총선운동본부 명의로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주민등록을 옮깁시다' 는 요지의 대자보를 7일부터 붙여 놓았다" 고 밝혔다.

◇ 배경〓총선연대가 지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선거법 불복종을 선언하거나 출마한 낙천대상 인사들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공연히 천명해왔다.

선관위와 검찰이 강력한 응징의 뜻을 표출하고 있음에도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일반 유권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주민등록 이전이란 직접 행동으로 나타나게 됐다.

상지대 유권자운동본부 대외협력부장 오민철씨는 "유권자 혁명을 통한 무능 부패정치인 퇴출에 나선 시민단체에 적극 호응한다는 차원에서 이같은 일을 하게 됐다" 고 말했다.

◇ 파장〓현행 선거법상 오는 22일까지 주민등록 이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파만파가 예상된다. 먼저 대학이 밀집된 지방도시권의 가세가 예상된다. 전국 각 대학 학생회가 최근 교육환경 개선을 주요 이슈로 내걸고 있는 것도 이같은 상황을 촉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들이 밀집된 원주에서 대학생 유권자운동본부가 중심이 된 것처럼 다른 지방 교육도시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시민단체다. 총선연대측도 동참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선관위가 낙선운동을 불법이라고 규정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선 지지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고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선관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치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다. 주민등록 이전이 초유의 현상인 만큼 합법과 불법의 선을 긋기가 다소 모호하다는 데 선관위의 고민이 있다. 선관위 김호열 선거관리관도 "현실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다" 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상렬.서승욱.조민근 기자

공동취재〓사이버 리포터 유영수

※ 중앙일보 총선 제보 사이버 리포터 사이트는 joins.com의 '바른선택 2000! 16대 총선'(http://www.joins.com/series/v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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