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오페라 '쌍백합 요한 루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 숭고함을 자아낸 ‘쌍백합 요한 루갈다’의 피날레 장면.

역사상의 실존 인물을 소재로 오페라를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시대적 상황을 상세히 그려내자면 남녀 주인공 외에 조연급 등장 인물이 무한정 늘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개인사와 정치적 소용돌이라는 거시적 흐름을 오가다 보면 드라마의 초점이 흐려질 수도 있다. 거의 모든 내용을 노래로 전달해야 하는 오페라는 연극과는 달리 시간적 제약도 많다.

창작 오페라 '쌍백합 요한 루갈다'(김정수 대본, 이철우 작곡)가 9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막이 올랐다. 2002년부터 '동녘''춘향'등 매년 창작 오페라를 초연해온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과 지휘자 이일구, 작곡가 이철우씨가 호흡을 맞춘 세 번째 작품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전주 출신 동정(童貞)부부로 순교한 가톨릭 성인 요한과 루갈다의 신앙과 삶을 다룬 이 오페라는 제5막 12장에 공연 시간이 2시간 30분 걸리는 대작이다. 조연급 이상 출연진만 19명으로 그중 여섯 명이 1인 2역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국악 뮤지컬 '님이시여 사랑이시여'(1997년)의 대본을 원작자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과감한 생략과 특정 장면의 부각 등 필수적인 작업을 거치지 못해 13분에 한번 꼴로 무대 배경을 전환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 장면 전환이 너무 잦다보니 계단식 간이 회전 무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음향 반사판처럼 무대를 감싸는 세트를 설치할 수 없는 데다 창극(唱劇)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도창(導唱)을 수호 천사로 설정하다 보니 마이크 사용으로 음악의 섬세함은 반감됐다.

다만 피날레 장면에서 합창단의 의상과 조명으로 순교의 숭고함을 그려낸 대목이나 대사 전달(레시타티보)과 노래(아리아)의 경계를 허물면서 독특한 음악세계를 선보인 이철우의 작곡법이 돋보였다.

내년 전국 순회공연과 이탈리아 공연을 앞두고 충분한 수정과 개작을 거쳐 한국을 대표할 만한 레퍼토리로 발전할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였다.

전주=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