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임하는 나무의 자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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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35면

지난주부터 대한민국의 전국 아침 기온이 영하권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월요일 발표된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만7100달러로 4년 전 수준입니다. 바야흐로 겨울입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이원수님의 동시입니다. 겨울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과연 나무보다 나을까요?
지천명(知天命)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 공자의 말입니다. 그런데 겨울나무는 이미 천명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있는데 사람은 그 나무의 장작을 페치카(pechka)에 집어 넣으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겨울나무는 아마 그 사람을 보고 “쯧쯧 이 나무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과거를 벗습니다. 화려했던 여름을 상징하는 단풍을 훌훌 비워냅니다. 그리고 찬바람이 오면 “너 겨울이냐? 나 나무다” 하며 늠름하게 겨울을 맞습니다. 이원수님에 의하면 휘파람까지 붑니다. “왕년에 내가 잘나갈 때는 말이야…”라며 추억에 잠기는, 그러나 속에는 결코 휘파람을 불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겨울나무는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나무는 다가올 봄을 상상하며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봄이 오지 않을까봐 초조해하지도 않습니다. 찬바람보다 더 강한 껍질 속에 잎 봉오리, 꽃봉오리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합니다. “우리나라 경제 U자야? L자야? 내가 산 주식이 고개를 쳐들기만 하면…”라며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 겨울나무는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나무는 겨울의 길이를 재지 않습니다. 겨울이 짧아지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따뜻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겨울이 따뜻하면 그 다음해에 해충이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보면 말이야. 집을 살 때는 언제이고, 주식을 살 때는 언제이고…” 맞을 때까지 끊임없이 예측하는 사람들에게 겨울나무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마음 반비례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추위는 강해지고, 마음이 강해지면 추위가 약해지는 법칙입니다. 겨울나무가 추천하는, 겨울에 임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고통량 불변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길을 건널 때 육교로 건너는 것이나 지하도를 건너는 것이나 길을 건너는 사람이 겪는 힘듦은 동일하다는 법칙입니다. 즉 육교로 올라가면 육교 끝에서는 내려오게 되고 지하도로 내려가게 되면 지하도 끝에서는 올라가게 되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겪어야 하는 겨울의 고통의 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면 나중이 편하게 되고 수동적으로 편한 길을 찾으면 나중이 힘들게 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겨울나무가 겨울에 임하는 우리에게 추천하는, 해병대 지옥훈련장의 슬로건입니다.

겨울은 역전의 드라마가 일어나는 때입니다. 겨울방학은 학생의 등수를 바꿔 놓고, 경제의 겨울은 기업의 순서를 바꿔 놓습니다. 그러나 그 순서는 자신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가 바꿉니다. 자신은 천명에 따라 겨울나무처럼 살았을 뿐인데 경쟁자가 우왕좌왕 뒤처져서 순서를 바꿉니다.

사람에게 나이가 있다면 나무엔 나이테가 있습니다. 반면 사람에겐 있는데 나무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육체연령과 차이가 나는 정신연령입니다. 나무는 겨울을 지낸 수만큼 나이테를 가지는데 사람은 그러하질 못하나 봅니다. 하여 50번째 겨울을 맞고도 지천명 근처도 못 가는 저에게 겨울나무는 말하고 있습니다. “겨울의 추위를 모르면 봄의 즐거움도 모르는 법입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모두 못 느낀다면 어찌 그 삶을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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